요새는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제주도로 몰려든 예멘 난민 사태로 그 난민 처우를 둘러싼 논란이 극심했다고 기억한다.
이 사태를 둘러싼 논란 전개 양상을 보면, 여러 성찰을 요구한다고 나는 본다.
그런 성찰들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오래도록 궁금해한 의뭉스러움 중 하나를 풀 단서를 푼다고 본다.
무엇인가?
나는 오래도록 역사에 아주 자주 보이는 민족 이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번 사태를 보니 고대 민족 이동의 여러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예컨대 민족 이동은 출발지 주체의 관점에서 그것이 발생하는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예멘에서는 왜 난민이 발생했던가?
둘째 어사일럼asylum 주체의 관점이다.
저들 난민을 대하는 토착사회, 재지在地사회의 여러 반응이다.
셋째, 이 두 지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다.
모국을 떠난 저들에게 제주도로 가라는 계시는 누가, 언제, 어떤 경로로 알려준 것인가?
등등
절박하기만 한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정착할 길은 두 가지 뿐이다.
받아줄 때까지 열라 굽신거리거나, 아니면 무력으로 제주도민을 정복하거나.
이들을 둔 재지사회 반응은 다양하기만 한데,
첫째 인도주의 관점이 있어 도움이 필요해서 찾은 저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는 것이어니와,
실은 이 관점은 가장 고래古來한 관점이다.
이 관점은 왕자王者, 혹은 권력자에게는 인정仁政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호조건이었다.
저 유명한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맹자적 관점이 있거니와, 맹자는 시종해서 소국小國을 지향한다 알려졌지만, 실상은 전연 딴판이라,
그는 결코 소국을 지향한 적이 없으니, 그가 당대 권력자들에게 시종해서 관철하고자 한 것은 인정仁政을 펼치면 이웃나라 백성들이 자발로 찾아와 대국大國이 된다는 정치철학이었다.
한데 이번 예멘사태에서 이 관점은 전연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채롭기만 한데
나는 이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왜 그럴까?
당장은 得이 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저들이 가져온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저들이 신진기술을 가져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저들이 지금 당장 정권 수호의 첨병인 용병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재지사회 반발과 관련해 또 하나 특이한 현상이 뭐랄까?
보수주의랄까? 원리주의랄까? 아무튼 뭐 이상한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하는 격렬한 반항이다.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새무얼 헌팅턴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데,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간단히 추리면 이민자에 대한 주류사회의 격렬한 보호본능이다.
앵글로색슨족 주체주의에 철저한 헌팅턴은 그 주체를 뒤흔드는 난민 혹은 이민들에 대한 격렬한 혐오와 그에 대한 무자비한 압살을 무기로 삼거니와, 물론 그가 말하는 이런 외부에는 히스패닉이라든가 화교가 대표하는 아시아계가 있거니와,
이상하게도 일부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지상천국으로 삼아 이 지상천국을 해치는 그 어떤 외부도 용납치 아니하려는 격렬한 저항정신이 있어, 이 저항정신이 이번 사태에서 격렬히 표출함을 본다.
지난 백년 혹은 수백년을 한반도에서 쟁투한 개신교도는 어느 정도는 주류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말하는 기독왕국은 개독왕국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회는 불신지옥이라, 이 불신지옥은 청소해야 하는 소돔과 고모라일 뿐이어니와, 이들은 불교에 대해서는 이미 승리를 구가했다는 의기양양함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역사를 반복하며, 이슬람에 대한 격렬한 배타를 잊지 않으려 한다.
이슬람 태동 이래 개신교나 가톨릭이 이슬람을 이긴 적은 없다.
그들이 비록 전쟁에서 이긴 적은 많다 하겠지만(이것도 실상은 다르다), 판판이 졌다.
개독으로 분류되는 한국개신교도들은 아직 소수 중의 소주에 지나지 않는 반이슬람주의가 격렬히 보이는데, 지금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미래가 중요하거니와, 그런 예수왕국을 해칠지도 모르는 이슬람주의는 아주 싹부터 잘라버리고자 하거니와, 이들에게 예멘 난민은 이슬람에 의한 침공이다.
예멘 난민과 같은 외부 민족 이동을 재지사회가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 그 재지사회는 주인이 바뀐다.
그런 선례가 얼마든 역사에는 있다.
고조선 준왕은 전국시대 말기의 혼란에 국경을 넘은 위만한데 서쪽 땅 100리를 떼어주고는 너희가 총알받이하라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위만한테 쫓겨나 왕국까지 찬탈당하고 말았으며
마한왕 역시 북쪽 부여 혹은 고구려에서 권력투쟁에 패하고 남하한 온조 일당을 받아들여 서북쪽 땅 백리를 떼어주었다가 나중에는 그런 온조한테 쫓겨났다가 기어이 패가망신하고 말았다.
유럽 대륙을 휩쓴 게르만족이 그랬고,
광할한 중앙아시아 초원을 버리고 몰려든 돌궐 사람들을 용병대로 받아들인 비잔틴제국도 그랬다.
지금 몰려든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를 무력 장악하고, 이를 발판으로 한반도 주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들에 의해 강요 혹은 이입된 이슬람이 한반도 주류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예멘 난민은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틀림없이 있을 민족 주체의 교체, 그 서막인지도 모른다.
***
작금 논란인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을 둘러싼 격렬한 반대논란 혹은 투쟁은 저와 같은 민족이동을 둘러싼 갈등의 또다른 국면이라 보아야지 않겠는가?
저런 난민사태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충격이라면 이 모스크 사태는 다른 경로로 이미 한국사회에 침투한 무슬림과 그것을 반대하는 어떤 저항의 충돌이다.
단순히 공사장 인근에 돼지머리를 갖다놨네 마네 하는 피상으로 이 문제 본질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저때 그리 시끄러웠던 예멘 난민 사태가 어찌 흘러갔는지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저런 난민정착이 그에 대한 실록을 망실하고 수천년이 흘러 어떤 신화가 만들어질까? 그들이 혹여 주류가 되는 날, 신의 계시 운운하고 제주에서는 구간이 그들을 맞이하는 수로와 허황옥 신화의 재판 아닌겠는가? (2023. 6. 22 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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