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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반평생 바친 김창겸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분에 한국 학술문화 비약적 성장"

송고시간 | 2019-06-28 06:10

한중연 36년 생활 마무리하는 '사전 산증인' 김창겸 부단장

"열띤 토론으로 표제어 정해…콘텐츠 보강이 장기 과제"


가찹게는 김천고등학교 선배인 형을 나는 언제나 애늙은이라 부른다. 


나는 그를 대략 20년전쯤, 내가 문화재 학술을 전담하기 시작할 무렵에 조우했다. 


지금의 김창겸에 익숙한 사람들은 누구냐 하겠지만, 좀 더 젊은날도 그에겐 젊음이 없었던 듯한 포스다.



남들이야 같은 김천이라 하면 이웃집처럼 다 안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도 펴 봐라, 김천이 얼마나 넓은지. 


직지사 사하촌 출신 형을 거창 무풍으로 넘어가는 대덕산 아래 동네 사람인 내가 알 턱이 있겠는가? 


그 당시에도 백과사전 편찬업무에 종사하던 형은 같은 김천 출신이라는 인연이 빌미가 되었겠지만, 관계가 돈독해져 나중에는 2003년 무렵인가에는 신라사학회 창립을 의기투합하는 단계로도 이어졌다. 이후에도 줄기차게 인연이 계속됐다. 


그는 40대로 접어들었을 20년 전에 이미 애늙은이였으니, 말하는 폼새도 영감이요, 하는 말들도 영감이며, 무엇보다 그가 교유하는 학술계 인사 대부분이 영감들이었다. 


그는 여타 비슷한 연배 혹은 후배들이라면 어려워하는 이른바 대가급 영감들이랑 아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농담 따먹기도 자주했다. 




천성이 능구렁이형인 이유도 있겠지만, 다름 아닌 이번 인터뷰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 업무에 종사하면서 그 실무를 담당하면서 체득한 버릇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번 다룬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사전 편찬에는 당대 내노라하는 연구자가 총동원되었으니, 그에는 물론 갓 신진에 진입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름값 하는 영감이 대부분이었다. 


그 영감들을 불러제껴다가 회의하고, 더구나 그 영감들한테 회의비며, 원고료며 하는 집행을 하다 보니,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그 영감들에 대한 울트라 갑이었다. 간단히 말해 젊은 김창겸은 늙은 영감들을 갖고 놀았다. 


그런 그가 마침내 반생 집으로 삼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떠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들어왔다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문을 나선다. 


애늙은이 김창겸이 이제는 진짜 늙은이가 되었다. 동료 친지들은 65세 퇴임하는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2년 전에 다 현직을 떠났지만, 호적을 조작했는지 어쨌는지, 2년을 더 해묵고 떠난다. 


퇴임 이후 이런저런 데를 알아보고, 또 이런저런 데서 제의도 오긴하나 본데 


제의 오는 데는 한사코 돈이 안 나오는 자리라 하고 

가고 싶은 데 두어 군데가 있었으나, 그가 갈 경우 다른 젊은 친구 일자리를 뺏는 데는 갈 수 없다며

추하게 보이기 싫다며 마다하는 형이다. 


그는 체면을 아는 사람이다. 

이것저것 정년까지 다 채우고, 그러고도 무슨 자리 없냐 기웃대며, 후배들이 가야 할 자리를 빼앗는데 여념이 없는 노욕에 물든 놈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현재의 김창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