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7월 16일 지금은 사라진 내 블로그 포스팅이다.
양견楊堅은 북주北周를 대체해 선양禪讓이라는 형식으로 소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隋 왕국을 창건하거니와, 창건 직후에는 北周가 종래 사용한 장안성長安城이 비좁다 해서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거니와, 이렇게 해서 선택된 곳이 같은 장안의 용수산龍首山이란 곳이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아는 중국 음식점 중에 용수산이 있는데 혹여 이에서 따왔는지 모르겠다)
통상 新왕조 건국과 함께 다른 곳에다가 도읍지를 물색함은 상례지만, 그래서 대체로 중국에서는 낙양洛陽과 서안西安(장안長安)을 왔다리갔다리한 까닭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그래서 두 도시는 이미 前漢 시대에 동도東都(혹은 동경東京. 낙양)와 서도西都(혹은 서경西京. 장안)이라 불리거니와, 그러함에도 이상하게도 수 문제 양견은 낙양을 버리고 같은 장안에서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했다는 점이 특색이다.
대흥성 평면도. 열라 큰 거대도시다. 이걸 8개월만에 쑥딱 만들었다.
이에 이 신도시 건설과 관련하는 기록을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검출하면 권 제175 진기陳紀9에 집중 등장하거니와 고종선황제高宗宣皇帝 하지하下之下 태건太建 14년 임인壬寅(582) 6월 조에 이르기를
丙申, 詔高熲等創造新都於龍首山. 以太子左庶子宇文愷有巧思, 領營新都副監. 愷. 忻之弟也.
丙申日에 詔하여 高熲 等으로 하여금 創造 新都토록 하되 龍首山에다 하라 하니, 太子左庶子인 우문개宇文愷에게 교사巧思가 있다 해서 신도부감新都副監으로 공사를 감독케 하니 (우문)개愷는 (우문)근忻의 동생이다.
라 하거니와 이를 통해 신도읍 건설을 추진한 시기와 그것을 실행에 옮긴 주체, 그리고 그 장소를 명확히 알 수 있거니와,
같은 해 12월 조에서는 덧붙이기를
丙子, 隋命新都曰大興城.
병자일에 수나라가 새로운 도읍을 이름하기를 대흥성大興城이라 했다.
라 해서, 새로운 도읍지 이름으로 대흥성이 확정되었음을 보여주니, 이 대흥大興이란 말할 것도 없이 隋라는 신왕조가 크게 흥성하리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나아가 그 이듬해인 고종선황제高宗宣皇帝 하지하下之下 지덕至德 원년 계묘癸卯(583) 춘정월春正月 조에 이르기를
庚子, 隋將入新都, 大赦.
경자일에 수나라가 장차 새로운 도읍 입주에 즈음해 천하에 대사면을 내렸다.
라고 해서 언뜻 이 시점에 新道로 입주한 것이 아닌가 오판할 수도 있으나, 入이라는 행위 동사 앞에 미래, 그리고 의지를 표시하는 將이라는 수식어를 주목하면, 이때 隋가 대흥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이미지 극대화를 위한 일환으로 대사大赦, 즉, 요즘으로 치자면 광복절 특사를 했다는 말이다.
대흥성 평면도. 열라 큰 거대도시다. 이걸 8개월만에 쑥딱 만들었다.
이를 발판으로 같은 해 三月 조에서는
丙辰, 隋遷於新都.
병진일에 수나가 마침내 새로운 도읍으로 천도했다.
라 해서 마침내 신도시에 황제가 입주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기록을 보건대 참으로 수상쩍기 짝이 없는 대목이 어떻게 신도시를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완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아!
신도시를 건설하지 못해 환장한 전임 정권 최고 통수권자가 문제 양견의 대흥성 건설을 공부했더라면, 충남 연기 공주 일대에 행정중심도시인지, 행복도시인지를 임기 내에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수 문제가 대흥성을 건설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같은 《자치통감》 권 제182 수기隋紀6 양황제煬皇帝 중대업中大業 11년 을해乙亥( 615) 중 봄 정월 조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소개되어 흥미를 돋군다.
애초에 高祖가 꿈에 洪水로 都城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보고는 마음으로 그것을 싫어했는데 그런 까닭에 도읍을 대흥大興으로 옮겼다.
初, 高祖夢洪水沒都城, 意惡之, 故遷都大興.
고 한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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