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소적렬蕭敵烈은 자가 낱로곤涅魯袞이다. 재상 소달렬蕭撻烈의 4세손이다. 식견과 도량이 크고 원대하여 향리에서 받들었다.
(관직 진출) 처음에 우군창사牛群敞史가 되었는데 황제가 그가 똑똑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불러 입시하게 하고는 나중에 국구상온國舅詳穩으로 옮겨 주었다.
통화統和 28년(1010)에 황제가 어러 신료에게 말하기를 “고려의 강조康肇가 그의 군주 송誦(고려 목종)을 시해하고 그의 족형 순詢(현종)을 세우고는 그의 재상을 하고 있으니 그를 대역으로 처벌해야 한다. 마땅히 군사를 일으켜 그 죄상을 물어야 할 것이다”고 하니 여러 신료가 모두 그래야 한다 했다.
(하지만) 소적렬이 간언하기를 “나라가 해마다 정벌하느라 사졸이 지쳐 있고 나아가 폐하도 상중이십니다. 올 농사도 풍년이 들지 않았고 그 상처도 아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섬 오랑캐가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성과 보루가 완정되고 단단하니 이긴다 해도 무공이라 할 만하지도 않고, 만일 실리한다면 아마도 후회가 남으리라 봅니다. 사신 한 사람을 보내 그 죄를 묻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저네가 죄를 자복하면 그대로 두고 그렇지 아니하면 상복을 벗고 풍년이 든 때를 기다렸다 군사를 내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정벌 명령이 내려진 때라 그의 간언은 실행되지는 못했다. 식자들은 옳다고 여겼다.
이듬해(1011) 동지좌이리필사同知左夷離畢事가 되었다가 다시 우이리필右夷離畢이 되었다.
개태 초년(1012)에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 변경을 순시했다.
이때 이리근夷離堇 아래에 있던 갑살월閘撒狘의 박리撲里와 실위失室, 그리고 발갈勃葛이 부족 백성들을 거느리고 도망치자 소적렬이 추격하여 그들을 사로잡아 본래 하던 일로 돌리고는 국구상온國舅詳穩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밀사樞密使 야율세량을 따라 고려를 정벌하고 돌아오니 동정사문하평장사同政事門下平章事가 더해지고 상경유수上京留守에 제수됐다.
소적렬은 사람됨이 관후하고 다스림의 요체에 통달하니 조정 신료들이 모두 군주를 보좌할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한인漢人인 행둥도부서行宮都部署 왕계충王繼忠이 그가 재목이라 해서 추천해 추밀사樞密使로 삼으니 황제가 그 일당이 아닌가 해서 중지시켰다.
중경유수中京留守로 있다가 졸했다. 집안 조카로 소홀고蕭忽古가 있으니 따로 열전이 있다. 동생은 소발랄蕭拔刺이다.
1. 蕭敵烈,字涅魯袞,宰相撻烈四世孫。識度弘遠,為鄉里推重。始為牛群敞史。帝聞其賢,召入侍,遷國舅詳穩。
2 統和尋十八年,帝謂群臣曰:「高麗康肇弒其君誦,立誦族兄詢而相之,大逆之。宜發兵間其罪。」群臣皆曰可。敵烈諫曰:「國家連年征討,士卒撫敞。況陛下在諒陰;年穀不登,創痍末復。島夷小國,城壘完固。勝不為武;萬於失利,恐貼後悔。不如遣一介之使,往問其故。彼若伏罪則已;不然,俟服除歲豐,舉兵未晚。」時令己下,言雖不行,識者韙之。
3 明年,同知左夷離畢事。改右夷離畢。開泰初,率兵巡西邊。時夷離堇部下閘撒狘撲里、失室、勃葛率部民遁,敵烈追擒之,令復業,遷國舅詳穩。從樞密使耶律世良伐高麗。還,加同政事門下平章事,拜上京留守。
4 敵烈為人寬厚,達政體,廷臣皆謂有王佐才。漢人行宮都部署王繼忠薦其材可為樞密使,帝疑其黨而止。為中京留守,卒。族子忽古,有傳。弟拔刺。
5 拔刺,字別勒隱。多智,善騎射。
6 開泰間,以兄為右夷離畢,始補郎君,累遷奚六部禿裏太尉。太平末,大延琳叛,拔刺將北、南院兵往討,遇於蒲水,南院兵少卻。至手山,復與賊遇。拔刺刀易兩院旗幟,鼓勇力戰,破之。上聞,以手詔褒獎,賜內廄馬。
7 重熙中,遷四捷軍詳穩,謝事歸鄉里。數歲,起為
昭德軍節度使,尋改國舅詳穩,卒。
'READING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린 김춘추 (0) | 2024.01.08 |
---|---|
괜히 청개구리겠는가? (1) | 2024.01.07 |
탁사정한테 죽다 살아난 고구려 후예 거란 외교관 고정高正 (0) | 2024.01.06 |
강조를 사로잡은 야율홍고耶律弘古 분눌은盆訥隱 열전 (1) | 2024.01.06 |
요사遼史 야율적록耶律的琭 야녕耶寧 열전 (0) | 2024.01.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