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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요시노가리가 아닌 두오모를 보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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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보고서는 고찰 편이 있어 이것이 뒤에서 말하는 논문과 어느 정도 접점을 이루기는 하나 절대 존재 근간이 기술 description이라,

어디를 팠더니 어느 구역에서 뭐가 나왔고 그것들이 배치 양상은 어떠하는지를 종합하는 데 있으니, 그에다가 그 계통을 기술하며, 요새는 자연과학 분석 결과를 곁들여 수록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고서다. 

반면 고고학 논문이란 저런 기술 너머에 대한 탐구이며 해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데 한국고고학이 양산하는 논문이란 것들을 볼짝시면, 물론 그렇지 아니한 것으로 분류한 만한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아니해서 근간이 보고서랑 차이가 없어 기술이 태반을 넘는다. 

이것이 어찌 논문이리오?
 

이딴 거 아무리 봐야 결론은 일본고고학 따라지다.

 
거개 논문이라 해서 싸질러 놓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거질 발굴보고서 하나를, 혹은 그 복수들을 버무려 축약한데 지나지 아니한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탐구가 실종하고, 실상 그네가 탐구라 한 것들이 실은 기술인 까닭이다. 

배열과 그에 토대한 속성표니 계통표니 유형분류니 해서, 그것을 토대로 몇 마디 결론이라는 것을 끌어내는 일을 한국고고학은 學이라 하나, 미안하나 이건 學이 아니라 나열이고 재배치고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學은 유물 유적 저 너머를 탐구한다. 유적 유물은 그 탐구의 수단 혹은 가이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고고학은 저 껍데기들을 조종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저네를 조종하는 힘, 그것이 바로 學이다. 

저들을 어떤 지침을 주어 어디로 몰고갈 것이며, 그를 통해 내가 무엇을 노리는가? 이것이 學이다. 

고고학은 유적이나 유물을 탐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을 뒤에서 움직인 힘, 논리, 제도, 구조를 파고드는 학문이다. 

같은 시대 혹은 비슷한 시대 신라토기인데,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현재의 지역 이름을 따서 경주식 토기니 의성식 토기니 하는 따위는 형이하학이다.

같은 나도 1년 전 내가 다르고 지금의 내가 다르며, 10년 뒤 내가 다를진댄, 그 다름은 지극히 당연할진댄,

그 당연함을 대단한 발견인양 되는양 같은 기종인데 주둥이가 어떤 데는 길고 어떤 데는 짧으며, 이쪽에서는 하나 뚫은 구멍을 저짝에서는 두 개 뚫었네 하며 그것을 속성표라는 이름으로 복잡다기하게 난수표마냥 구축하고서는 그것을 고고학이라 선전하는 일 역겹다. 

그것이 어찌 학문이겠는가? 
 

언덕배기 가장 높은 지점에는 언제나 두오모가 들어선다.

 
나아가 그리하여 이 다름에 착목해 어떤 지역이 어떤 시기에 신라에 속해 있었기는 하지만, 상당한 자치권을 누렸네 마네 하는 결론 역시 역겹기 짝이 없어,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지나지 아니하니, 지금의 내가 어떤 회사에 속한다 한들, 내가 완전히 회사에 동화해서 내가 회사이겠는가?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부려야 하는 유적과 유물이 나를 대체한 주인 자리를 차지한 채, 나는 갈 곳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모습, 이것이 작금 한국고고학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고고학은 앞서 이야기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로 긴긴 날밤을 새우는 중이다. 당연한 이야기, 당연한 나열을 거대한 발견인양 치부하며 그것이 뭔가 대단한 연구나 되는양 서로 인용해주며 서로 박수쳐주며 우리가 고고학을 한다는 늪에 빠지고 말았다. 

고고학은 또 그것이 겨냥하는 궁극이 현재요 미래다. 고고학 역시 현대사이며 미래사다. 

단절된 과거는 없다. 단절이라 생각하는 그것도 그 단절이 후세를 부정하거나 말살하는 방식으로 낳았으니, 그 단절은 현재의 아래 저 지층에 면면히 놓여있다. 이 면면한 층위에 대한 탐구가 지향하는 궁극은 현재요 미래다. 

우리가 왜 저런 학문을 하는가? 우리가 현재에 이르게 된 탐구의 연속물이다.

그래서 고고학은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의 문제의식에서 단순히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 계승 혹은 단절적 계승이라 치부할 만한 것들로 지남자를 잡고서 나아가야 한다.

그 대표가 기후와 풍토라, 거개 국내 발굴보고서를 보면 앞대가리 부분에 해당 지역 그것을 간략히 소개하며, 나아가 잡다스레 삼국사기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를 갖다 대는 일을 으레 보지만 미안하나 이 대목은 언제나 본문과는 따로 놀아, 그것이 도대체 해당 유적 유물 분석에는 어떤 방식으로 녹아드는지 나는 제대로 된 사례를 보지 못했다. 

풍토와 기후, 이른바 자연을 떠나 어찌 사람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 분야를 천착하는 4기 지질학이니 해서 고고학 쪽에서도 접목이 없는 것은 아니며, 또 경우에 따라 해당 도시유적이 늪지였네 홍수 피해 잦은 지역이었네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이 없지는 아니하나, 하시도 기후 풍토를 떠난 고고학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매양 사례로 들듯이 청동기시대 이른바 주거지 혹은 마을을 보면, 거개 언덕배기 정상에 마을공동회관 정도에 해당하는 큰 건물이 자리잡거니와, 이건 언덕배기를 떠나서는 결코 왜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해명할 수 없다. 특히 한반도는 겨울 바람이 매서워 저런 언덕배기는 사람이 살 수는 없다.
 

몽마르트 언덕 날망

 
하지만 언덕배기 정상이 주는 위압감이 있어, 언제나 그 주축이라 할 만한 건물이 자리하니, 바로 이 자리가 유럽 어느 도시를 가건 두오모가 들어선 지점이다. 

한국청동기사회를 연구하는 고고학도들이 보아야 하는 곳은 요시노가리가 아니라 유럽 두오모다. 요시노가리? 아무리 파 봐라, 일본 고고학 따라지밖에 더 되겠는가? 

한국고고학은 유감스럽게도 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심 혹은 유념이 제로다. 우리가 현대학을 한다는 무장도 없고, 신념도 없다. 

현재와 유리한 과거는 언제나 낭만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한국고고학을 배회하는 낭만이라는 유령을 때려부수어야 한다. 
 

*** 
 
몇 가지 논점이 섞였지만, 생각나는 대로 뇌까리고는 일단 길어져서 끊는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지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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