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나는 칼 혹은 도끼에 대한 단상을 썼다. 단상이라 하지만 그에는 내 수십년 공부가 매복한다.
칼 도끼 거울 인장..하나하나 단행본으로 너끈한 소재 혹은 주제이며 나는 이것들이야말로 하나하나 이른바 문화사적 맥락을 가미한 대작이 나올 만 하다고 본다.
그 가장 가까이 있는 분야가 고고학 역사학 민속학 같은 데다.
하지만 저 중에 그 어떤 것도 내 기준에 무릎을 칠 만한 단행본 하나 없다.
대신 씨잘데기 없는 무슨 쪽 논문은 그리도 많은지 다 쪼가리 쪼가리에 지나지 아니해서 수백편을 헤아리는 논문은 하나 같이 기능주의로 일관해 양식이 어떻네 편년이 어떻네로 수십년을 갉아먹다가 이젠 찌꺼기도 남지 않으니 요샌 철 지난지 한참인 제조기술 타령만 일삼는다.
칼만 해도 이른바 환두대도를 중심으로 논문이 오죽 많은가? 하지만 그 논문 어디에서도 칼에 관한 가장 근본하는 의문, 곧 칼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글을 못 봤다.
앞에 열거한 것 중에서도 개중 동경만은 제법 단행본 혹은 그에 버금하는 묵직한 논문이 던져졌지만 이 역시 마잔가지라 자료 정리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 이 따위 수준으로는 백년전 매원말치를 단 한 발짝도 넘어서지 못한다.
거울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거울의 문화사는 출발한다. 또 문화사는 특정한 시야에 고정한 틀을 과감히 깨부시는 데서 이른바 인문학적 성찰을 동반한 대작이 쏟아진다.
작금과 같은 학문 분파주의가 판치는 세계에서는 문화사 대작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고작 새로운 자료 출현에 따른 새로운 사례 하나 보강할 뿐이며 옛날에는 土라 판독한 글자를 士로 교정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꼴로는 고고학을 예로 들자면 저 칼 도끼 거울 인장으로 무슨 문화사 대작이 나오겠는가?
고작 그걸 타개한답시며 문헌자료에 보이는 관련 기록 한 두개 보강한다 해서 없던 인문학적 성찰이 일어날 리도 없고 그걸 토대로 하는 문화사 대작이 나올 리도 없다.
劍과 鏡에 대한 후쿠나가 미쓰지 福永光司 장편 논문 한 번 읽어봐라. 이 중국사상사 노장사상사 도교사상사 연구자가 집필한 그 논문 앞에 모든 고고학 관련 논문 단행본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래 능력이 안 되고 머리가 안 된다 치자. 하지만 근처에는 가야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문양이 어떻고 외래계 요소는 무엇이며 그것을 만든 기술에는 대롱불기가 동원됐니 부엽공법을 썼니 분할성토를 했니 하는 거지발싸개 수준의 관심으로 일관해야겠는가?
내가 논문을 읽지 마라 한 이유가 그것이다. 논문을 읽는다 함은 그 논지에 찬동하건 반대하건 내 사고방식은 그에 구속될 뿐이다.
각주를 달 것인가 아니면 그 각주 원전을 내가 쓸 것인가는 바로 이런 독서 그리고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논문은 창발을 꿈꾸는 자들한테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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