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몽땅 들어내서 현장은 잔디밭 씌우고, 그 옆 적당한 곳 골라서 박물관이라는 거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한국 문화재보호정책 근간이다.
일전에 나는 저와 같이 썼다. 지금 똑같은 발견이 있다 해도 저리할 것이다. 왜? 보고 배운 것이 저것밖에 없어서다.
보고 배운 거라곤 저리해야 유적이 보호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지 뭐가 있겠는가?
발굴현장마다 저 꼴이 벌어지니, 정작 현장 가면 암것도 볼 것이 없어 잔디밭뿐이다.
유물 끄집어낸 현장은 복토라 해서 다시 흙 덮어씌우고는 출입문을 닫아걸어버린다. 그에 앞서 유물은 보존처리 등등 각종 구호 달아서 기어이 모조리 끄집어내고는 박물관 수장고나 전시실에 쳐박아 두니, 유물과 유적이 따로노니 이러고도 무슨 제대로 된 음미가 가능하겠는가?
애초 황남대총 발굴을 해 부칠 적에 계획은 그 덩치 큰 무덤을 발굴하고는 내부를 개방한다는 것이었지만, 이 계획은 무산하고, 대신 그 대타로 고른 천마총을 그리하는 걸로 결판났으니, 종래 현장과 결합한 현장박물관은 오직 이 천마총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천마총 전시관은 문제가 심대해서, 그 무덤 내부에서 전시하는 유물 중에 제자리를 지키는 건 한 점도 없고, 그나마 전시품은 모조리 레플리카 짜가다. 그 막대한 토기만 해도, 애초 무덤에서 나온 진짜 신라 유물은 경주박물관에 쳐박아 둔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다.
그 막대한 토기가 무슨 신주단지라고, 또 현장에 전시하면 뭐가 문제라고 모조리 현장을 떠나 박물관 수장고 혹은 상설전시실을 채운단 말인가?
하도 이런 지적이 잇따르니(그런 주장도 실상 문화재업계에서는 나만 혼차 부르짖었다만) 근자에는 금관총인지 머시긴지는 아예 재발굴 당시 현장 박물관 계획을 세우고 현장 박물관을 세운 모양이라, 이 전시관 개장을 하고서는 현장을 가보지 못해 단안은 못하겠지만, 보나마나 유물이라는 유물은 죄다 짜가 가차 레플리카일 것이요, 진짜배기는 경주박물관이 꼼쳐 놓았을 것이다.
이런 심각성은 전연 감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가서는 와! 와! 와! 하는 꼴을 보면 구토가 난다.
우리네 문화재 현장이 언제나 이 모양 이 꼴이다.
이 친구들 머리엔 뭐가 들었는지, 또 어디서 배워 먹은 상식인지, 유물은 일단 끄집어내서 박물관에 쳐박아 두며, 현장을 봉쇄 잔디밭 가꾸어야 그것이 문화재 보존이라는 등식이 자릴 잡았다.
그러니 발굴이 끝난 모든 문화재현장은 빈껍데기뿐이라, 알맹이 끄집어 내고 삶아먹고 버린 전복 껍데기나 진배없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누누이 말하듯이 기술만 있을 뿐이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한다는 그 고민 그 방향 그 정립이 없기 때문이며
배운 것이라곤 고작 발굴은 파괴이며 그런 까닭에 유물 유적은 땅속에 있을 적에 가장 안전하며 그를 위한 실측과 발굴이야말로 고고학의 기본이라는 똥덩어리뿐인 까닭이다.
고고학과 문화재학을 혼동해서 고고학이 곧 문화재학이라는 허황의 소산이 저와 같은 참사를 부르는 것이다.
archaeology에서 heritology로의 전환은 지상명령이다.
고작 고고학이 하는 일이라곤 낭만기행 뿐이다. 팠더니 뭐가 나왔더라 이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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