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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우리 프로그램은 어떤가요?: 어린이를 인터뷰하기

by 느린 산책자 202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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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인터뷰는 성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어린이를 인터뷰 하겠다 했을 때, 주위의 몇 명이 물었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말해줘?”라고. 

하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인터뷰는 어른을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관람객 만족도 조사가 있다. 설문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묻고자 할 때 하는 인터뷰이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아마 이 인터뷰 말고, 지역 조사를 할 때 하는 인터뷰가 더 많을 것 같다. 문헌 조사로는 알아낼 수 없는 지역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전시를 할 때도 인터뷰를 한다. 교수님들을 모시고 하는 인터뷰도 있지만, 전시 주제에 대해 경험해 본 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도 있다. 그렇게 하면 마치 죽어있는 내용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 
결국 인터뷰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알고 싶은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뿐.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교육프로그램에서 ‘진짜 어린이의 의견’이었다. 설문지에서 ‘매우 좋아요’, ‘좋아요’에 가려진 진짜 어린이의 의견. 한편으로는 ‘진짜 보호자의 의견’도 궁금했다. 무료로 이루어지는 박물관의 교육, 그리고 주말 혹은 야간의 시간을 내준 강사와 학예사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없어, ‘좋아요’로 대체된 그 이면의 의견. 

이전에도 보호자의 의견을 보다 더 알고 싶어서, 인터넷 설문조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설문조사를 계획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다. 

‘수업 후 설문조사는 강사가 앞에 있으니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니까 별도의 설문조사를 하면 솔직하게 답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은 결과지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설문조사를 하고 받기로 한 보상이 다음 교육프로그램 수강권이다보니, 쓴 소리를 해줄 보호자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비대면 설문조사가 아니라, 대면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결심을 다시 불러온 것은, 내년도 교육프로그램을 계획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어쩌면 이미 연초부터 하려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안하다가 이제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터뷰는 무언가의 데이터를 얻기 위한 용역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박물관들은 장기 계획으로 어린이박물관 관람객 조사를 계획했고, 그를 통해 어린이와 보호자의 의견을 수집했다. 하지만 그냥 갑자기 ‘아! 이걸 해봐야겠어.’라고 생각한, 한 템포 늦은 나로는 그냥 내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지난주부터야 어린이와 보호자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린이와의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수업시간의 어린이들을 마주한 것 말고는 어린이와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 보았던 어린이들은 정답을 말하고 싶어서 번쩍 번쩍 손을 드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또 깨달았다. 아. 인터뷰에도 복불복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복불복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어린이는 드물었다. 그래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보호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어 다행이다 생각했다. (원래는 별도 인터뷰를 해야 할까도 고민했기 때문에, 같이 인터뷰한 것이 다행이었어라고 생각했다. 라포를 쌓고 2회차 인터뷰를 할 때면 분리 인터뷰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초반에 어린이의 말문이 터지기 전까지, 보호자가 옆에서 어린이의 의견을 한 번 걸러 통역(!)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제일 듣고 싶었던 것은 우리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느낌, 어떤 것을 박물관에서 해보고 싶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나보다. 깜짝 선물을 준다거나 혹은 연극식 수업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재밌었다고 답해주었다. 3층의 도시모형영상관에서 자기 집을 찾는 것도 우리 박물관의 재미 요소인가보다. 지금까지 만나는 아이들 모두가 이 부분에서는 같은 답을 해주었다. 

그 외에 박물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았을 때는, 거의 대부분이 디지털을 이용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커버려서, 그런 것이 시시한 데 어린이의 눈에서는 디지털은 아직도 매력적인 것인가 보다. 디지털 이외에 나온 공통적인 대답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정적이다 보니, 그 지루함을 깨트릴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은가보다. 어린이 중 한 명은 나에게 다른 박물관 프로그램 중, 재밌었던 것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알겠어. 선생님이 꼭 재밌는 걸 만들어줄게) 

#제주도에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 (그런데 M아, 여긴 어린이말고도 어른도 재밌단다.)

그동안 다녀보았던 박물관 중 재미있었던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제주도의 넥슨 컴퓨터 박물관과 글로벌지식 협력단지의 상설전을 추천해주었다. 둘 다 보았던 곳이었는데, 그곳이 그렇게 재미있었던가하고 다시 돌이켜 보게 되었다. 

글의 마지막은 어떤 어린이와의 대화로 마무리 하겠다. 인터뷰를 하면서 제일 흥미로운 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박물관과 타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중 재밌었던 것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저는 제목이 재밌어 보이는 걸 보고, 이걸 듣고 싶다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제목만 재미있고 내용이 재미없는 것이 많았어요.”

내용이 재미없는 것은 짐작이 가는데, 어떤 제목이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떤 제목이 재밌어 보였냐고 했더니 마침 우리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을 이야기한다. 재밌어 보이는 포인트가 뭘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 프로그램 제목이 왜 재밌어 보였어요?”

 그랬더니 어린이가 답했다. 

 “별명왕이라고 하니 별명이 얼마나 많길래 별명왕일까 궁금했어요. 그리고 육조거리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봐서 육조거리가 무엇인지도 궁금했어요.”

어린이의 말에서 교육프로그램의 제목도 흥미롭게 지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초보 인터뷰 진행자였지만, 협조적인 어린이와 보호자들 덕분에 반 정도의 인터뷰가 끝났다. 나머지 세 가족의 인터뷰가 기다려진다. 어린이들이 어떤 재미있는 말을 해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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