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을 달려 드디어 부하라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부하라 올드타운에 있는 숙소에 짐을 내리고 칼란 미나렛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장거리 이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걸어다녔다.
숙소에서 1km 내외의 거리는 걸어서 다녔는데,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편하긴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니기에 약간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실제 골목의 속살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치안이 좋아서 다니기 편했다.
또 만나는 사람들도 친절해서 골목을 다니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골목에서 눈을 마주치고 가벼운 목례만 해도 반갑게 인사해주고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것이 우리나라 시골 동네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사람들은 한국말을 듣고는 반갑다고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본격적으로 부하라를 살펴보면,
'부하라'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으로, 부하라가 이슬람교 성지임을 나타내고 있다.
-> 일반적으로 부하라가 이슬람교 성지로서 도시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 부하라에는 불교가 먼저 전래되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로 불교의 사원이라는 의미로 부하라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과거 전성기에는 300여 개 모스크와 167개 메드레세가 있었으며, 이슬람 공부를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약 2만여 학생이 부하라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부하라는 중앙아시아 최고 이슬람 성지로서 9~10세기에는 과학 · 문예 중심지였다.
16세기에는 과거 부하라 칸국 수도로, 이슬람 성직자 양성기관이 있었고, 수많은 이슬람 사원이 있었기에 중앙아시아 최대 종교도시로 유명하였다.
부하라 칸국은 우즈베키스탄 3대 칸국 중 하나였는데, 19세기 이래 쇠퇴하였다고 한다.
숙소에서 10여 분 정도 걸어서 제일 처음 만난 것은 두 개 커다란 모스크인데, 북쪽에 있는 것은 울루그벡 마드라사(Ulugʻbek madrasasi)이고, 맞은 편에 있는 것은 압둘라지즈 칸 마드라사(Abdulaziz Khan Madrassah)이다.
https://maps.app.goo.gl/1UtvpEXnY2x5ezVr9?g_st=ic
1417년 울루그벡이 지은 마드라사로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교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마드라사와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었으며, 화려한 장식 또한 유사하다. 또 '무슬림에게는 교육열이 반드시 필요하다.' 라는 문구도 함께 새겨져 있다.
티무르 제국 시대 유산으로는 이 울루그벡 마드라사가 유일하다.
※ 울루그벡은 아미르 티무르 손자로 뛰어난 수학자, 천문학자, 역사학자로 이름을 남겼는데, 사마르칸트에 그가 만든 천문대가 유명하다.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곳곳에서 울루그벡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10만숨 화폐에 울루그벡과 그가 만든 천문대가 도안으로 들어가 있다.
울루그벡에 대한 이야기는 사마르칸트 편에서 다시 자세히 얘기하겠다.
※ 마드라사, 메드레세로 불리는 모스크는 이슬람 신학을 배우는 학교를 의미하지만, 신학 이외의 과학, 천문학 등 다른 학문을 배우는 학교도 모두 마드라사라고 부른다.
울루그벡 마드라사 맞은 편에는 이보다 약 200년 뒤에 지은 압둘라지즈 칸 마드라사가 있는데 더욱 더 화려하고 색채도 다양하다.
이 마드라사 내부는 타일로 장식한 것이 아니라 채색되어 있었는데, 안내하는 분 말로는 오리지날 그대로라고 한다.
특히 들어가는 입구와 내부의 벽면의 천장 장식이 공작새(peacock) 꼬리를 연상하게 하는 조각과 문양으로 채워져 있어서 매우 화려하다.
다른 마드라사와 비교해 보면 이렇게 공작새 꼬리 모양 장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드라사를 지나 칼란 광장에 들어서면 오른 쪽에 칼란 미나렛(Kalon Minaret)과 칼란 모스크(Kalan Mosque)가 있고, 왼쪽에 있는 것은 미르 아랍 마드라사(Mir-i-Arab Madrasa)이다.
부하라에 수 많은 모스크와 건축물이 있지만 이 칼란 미나렛과 칼란 모스크야 말로 부하라를 상징하는 대표일 것이다.
칼란 미나렛은 무함마드 아슬란 칸(Muhammad Arslan Khan, 1102-1129)이 1127년 건축했는데 높이 45.6m, 원추형 최상단부까지 포함하면 48m라고 한다.
외벽은 벽돌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문양으로 구성하여 기교와 화려함을 볼 수 있다.
상단부는 푸른 색상을 내는 벽돌로 장식하였는데, 유약이 발린 벽돌을 장식으로 사용한 초기 사례라고 한다.
숱한 외침과 붕괴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의미 외에 꼭대기에 불을 밝혀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한 때문이라고 한다.
칼란 모스크는 1514년 건설된 것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다. 가로 178m, 세로 78m의 중정은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이날 날씨가 흐려서 좋은 사진이 없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하라 올드타운 내에 만들어진 건축물은 대부분 벽돌을 사용했으며, 지금도 민가들은 벽돌을 많이 사용해서 집을 짓고 있었다.
(골목에 지은 집들은 시멘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세계문화유산 역사지구 내에 있어서 규제가 있는 건지, 현재도 벽돌로 집을 짓는 것이 일반화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벽돌을 쌓아서 40~60m 높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과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벽돌 건축술이야말로 이슬람 건축 문화를 이해하는 배경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하라 첫날 마지막 코스는 아르크 오브 부하라(Ark of Bukhara)로, 부하라 요새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르크(Ark)' 자체가 성채,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 모양은 히바에서 본 이찬칼라 성벽과 거의 유사했는데, 전체를 벽돌로 쌓은 것이 아니라 하단부에 석재로 기초를 마련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아르크는 5세기 경에 성벽을 쌓았다고 하며, 1920년까지 부하라왕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부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부하라 첫 답사를 마치고, 숙소의 루프트탑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어느덧 여행 일정은 3일이나 지나버렸고, 벌써 여행도 서서히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부하라에서의 마지막 날이 시작된다. 부하라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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