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 둘째 날이 밝았다.
첫날은 여행 기간 중 처음으로 흐린 날씨였지만,
다시 햇빛이 쨍쨍한 한여름 날씨로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모든 일정은 걸어서 소화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라비하우스(Labi Hauz)다.
하우스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오아시스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는 연못 100여 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 수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연못들을 연결하는 수로망이 오래전부터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연못 주변에는 여러 마드라사 건물이 있는데 모든 건물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인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Nodir Devonbegi Madrasah)만 소개하겠다.
17세기(1622-1623)에 지은 건물로 여행자 숙소 목적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마드라사로 개조되었다 한다.
정문에는 두 마리 세무르그(불사조)가 마주본다.
불사조는 흰 사슴을 발톱으로 쥔 형상인데 불사조는 행복, 사슴은 고통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위에 중앙에는 태양 안에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사마르칸트의 쉬르도르 마드라사 그림과 같은 것이라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우상숭배를 부정하는 이슬람 교리에 반대되는 예외적인 것으로, 당시 집권자들의 종교를 뛰어넘는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불사조라고 하지만 공작새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나라 봉황과 매우 닮아 보였다.
이곳 마드라사는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며, 저녁에는 전통공연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라비하우스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네 개 첨탑 기둥이 인상적인 초르 미노르 마드라사(Chor Minor Madrasah)를 본다.
1807년에 지은 건물로 의식과 은신처 기능을 지닌 복합 건물이라고 한다.
역사지구 건축물이 몰린 데서 약간 떨어져 있어 놓칠 수도 있지만, 라비하우스에서 멀지 않으므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라비하우스를 지나 서쪽으로 걸으면, 작은 모스크 건물과 함께발굴 유적을 본다.
이곳이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Magoki Attori Mosque).
부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는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1936년 러시아 고고학자 시슈킨이 발굴했다 한다.
마고키는 '굴안' 이라는 뜻으로 둘레가 굴처럼 파인 데서 붙은 이름이며,
아타리는 '약을 판매하는' 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모스크 주변에서 약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모스크 벽면은 세 층으로 나뉘어 있어 그 역사를 말해준다.
아래에 조각된 조르아스터교 아라베스크 무늬의 벽돌층, 그 위 불교양식 기단 그리고 그 위에 이슬람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아마도 종교가 유입되는 순서 그대로 그 위에 계속 건물을 세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에서 조르아스터교, 불교, 이슬람교에 의한 건축물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부하라 카페트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도시 이름 '부하라'는 사찰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단어 '비하라[ vihāra ]' 혹은 '바하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페이스북 친구인 이정우 선생님께서 자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하라는 불교 사원(가람)에서 승려들이 수행하거나 생활하는 구역을 말하는데, 인도의 불교 석굴사원은 대개 스투파를 안치한 차이티야와 승려들이 머무는 비하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칼란 미나렛과 아르크 부하라를 지나면 볼로 하우즈 모스크를 만나게 된다.
볼로 하우즈(Bolo Haouz) 모스크는 1712년에 세웠는데, 당시 부하라 통치자 아부파유드칸(Abu Fayud Khan)이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다른 이름으로 ‘금요일의 모스크(Friday Mosque)’라고도 불린다.
이슬람 도시들은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에 거리에 나온 이슬람 교도 전원이 참석하여 에배할 만한 규모의 모스크가 하나씩 있는데, '프라이데이 모스크'란 바로 그 모스크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볼로하우즈 모스크는 부하라에서 상당히 규모도 크고 종교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던 모스크였다고 한다.
또한 건축적으로도 건물 전면에 여러 개 기둥을 받쳐 만든 테라스의 규모와 기둥 조각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도시간이 겹쳐서 내부에 들어가보진 못했다.)
볼로 하우즈 모스크를 지나면 중앙아시아 현존 최고의 이슬람 건축물이라고 불리는 이스마일 사마일 묘(Somoniylar maqbarasi)를 만나게 된다.
건물은 한 칸 크기로 크지 않은 규모이며 반구형 돔 지붕 형태를 한 단순한 구조지만 벽돌을 쌓아서 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벽면은 다양한 문양의 벽돌로 여러 가지 모양을 보여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건물의 규모와 형식은 매우 단순하지만, 외벽 문양은 매우 화려하다.
단순함과 화려함, 이 상반된 두 미감이 매우 조화로우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이슬람 초기 건축양식의 영묘로 892년에서 943년에 걸쳐 지었다.
9세기 말에 부하라를 점령하여, 수도로 정한 사만 왕조의 이스마일 사마일이 부친을 위해 지은 영묘지만, 그 후 그와 그의 자손도 묻혀 사만 왕조의 왕족 영묘가 되었다.
몽골 침략으로 부하라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을 때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와 함께 이스마일 영묘도 거의 땅 속에 묻혀있어서 발견되지 못했는데, 1925년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내부 역시 벽돌로 여러 가지 문양과 장식을 돋보이게 만들었으며, 출입문 외에 나머지 3면 문은 벽돌로 문양을 내어 쌓았는데, 바깥 빛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스마일 사마일 묘 바깥으로 시장(Central Bazaar)이 연결되어 있어서,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이 바자르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성벽과 문을 만나는데,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히바의 이찬칼라와 디샨칼라처럼 아르크 부하라가 내성이고, 이 성벽이 외성이 아닌가 한다.
구글지도를 보니 성벽 일부만 남아 있는데, 남아 있는 성벽 구간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성 이름은 Wall of Bukhara, 문 이름은 Talipach Gate라 한다.
다시 라비하우스로 돌아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가, 사람구경 겸, 야경을 보러 다시 라비하우스로 나왔다.
낮에 무척 더워서인지, 이곳은 밤에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밤에 많이 놀러 나왔다.
라비하우스는 밤에 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오아시스 도시로서 여행객들이 쉬어가던 그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 보였다.
이렇게 짧은 부하라 이틀을 마치고, 이제 내일 새벽기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간다.
굿바이! 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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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답사기(4):부하라(마드라사, 칼란 미나렛&모스크, 부하라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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