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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원효의 선물, 덕동댐 적석목곽분과의 조우

by taeshik.kim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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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만 2년에서 채 미치지 못하는 2017년 8월, 나는 해직 당시 근무 부서인 전국부로 복직했다가 2018년 4월 17일 문화부장으로 문화부에 복귀했다.

문화부장 발령 직전, 그러니깐 전국부 근무 시절인 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아마 휴가였던 듯한데(이튿날이 삼일정 공휴일이라 아마 연휴 엮어 휴가를 냈을 것이다.) 나는 경주에 있었으니 언제나처럼 사진작가이자 김천 고향 선배인 오세윤 형과 함께 경주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녔으니, 그날 어찌하다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마당을 장식하는 우람한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본래 있던 그 고선사지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그날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또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날을 증언하는 사진도 그렇고, 하도 비를 쫄딱 맞아 질퍽질턱하는 강안 모래펄에서 직살나게 고생한 까닭이다. 
 
 

네이버 지도

경주시덕동댐관리사무소

map.naver.com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가 주석한 곳이라 해서 저명한 고선사는 그 터가 남았다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그 일환으로 하류에 건립하는 경주보문관광단지를 위해 형산강 지류인 북천을 막아선 덕동댐이 형성한 덕동호에 수몰한 상태였으니, 다만, 그 절터가 가뭄이 극심하고 그리하여 덕동호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 흔적이 드러나기도 한다고 하므로

마침 그해 겨울은 극심한 갈수기라 전국이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고, 그리하여 이쯤이면 잘하면 고선사 터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겠다 해서 현장으로 출동한 것이었다. 

 

보문관광단지(왼쪽)와 덕동댐 덕동호

 
 
다만, 그 석탑이 있던 고선사 자리는 접근이 불가능한 지점이었고, 덕동호를 뒤편으로 빙돌아 고선사 터 서쪽 맞은편 암곡1지 마을이라는 데서 호수 건너 반대편 산쪽 고선사 터를 살피기로 했던 것인데,

막상 그 마을에서 바라보는 고선사 터는 흔적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오 작가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고산사지인데 안 보이네" 할 뿐이었으니, 아마 그 터 일부는 노출되었을 법하지만, 하도 기상 여견이 좋지 아니해서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한데 갈수기라 평소에는 수몰한 상태인 호수변이 바닥을 버쩍 드러냈는데, 고선사지로 좀 더 가까이 가보고자 하는 마음에 그쪽으로 다가갔더니 웬걸? 그 바닥이 온통 무덤이었고, 그 무덤이 수몰해서 노출한 무수한 토기 파편이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살피니 주변이 온통 무덤이었다. 딱 봐도 적석목곽분들이었고, 널부러진 토기들도 온통 적석목곽분 시대 신라토기 그것이었다. 

놀래서 이게 뭐냐 하니, 경주 구석구석 돌아다니지 않은 데가 없는 오 작가도 생면부지였던 듯 멍만 때릴 뿐이었다. 그 며칠 뒤에 안 사실이지만 직전 이곳을 답사한 경주 지역 역사애호가들(뒤에 나오게 되는 이용호 선생도 그 중 한 명이다.) 역시 이곳을 찾아서 현장 상황을 확인했었다. 

현장을 찾은 그날, 나는 비바람을 긋는다고 현장을 나와 인근 암곡1지 마을 어구로 퇴각하고는 직전에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곁들여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내 페이스북 계정에다 올렸으니 

 
폭우 뚫고 찾은 덕동댐 수몰 노출지.
대규묘 적석목곽 고분군 발견
매장주체부가 노출됐고 호석열은 뚜렷하며 각종 고신라 토기 버글버글
문화재청에 정식 발견 신고하겠음

 

 
 
저런 포스팅이 있은 직후, 저 포스팅을 본(물론 그는 절대로 내 포스팅을 봤다는 토설은 안한다.) 중앙일간지 모 문화재 담당기자(나랑 같은 시대 문화재 담당을 오래했지만 사이는 좋지 않아 서로 소 닭 쳐다 보듯 한다.)가 나랑 동행한 오 작가한테 전화를 해서는 저걸 취재하고 난리를 피더니, 내 기억에 [단독]이라고 떡 하니 붙인 '경주 덕동호 바닥서 신라인 ‘공동묘지’ 나왔다'는 제하 기사를 3월 3일 자로 낸 것이 아닌가?

요약하면 5~6세기 신라 석곽묘 100여 기가 가뭄으로 물 마르자 모습 드러냈고, 수몰지역이어서 후속발굴에 당국이 고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보도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배꼽 잡고 웃었던지, 아무튼 그 보도가 있은 3월 3일 그날 나는 저 기사를 인용하면서 내 페북 계정에다가 아래와 같은 긴 글을 썼다. 괄호 안은 지금 내가 문맥을 밝히기 위해 추가한 것임을 밝힌다.

 
어젯밤, 오세윤 작가한테 (그 기자가) 전화해서 취재하고 난리를 피더니, (저리 보도했으니) 잘했다. 

백여 기라 했지만, 현재로서는 뻥이다. 노출되어 육안 확인가능한 것은 10여기 정도다. 다만, 주변 지형 상황을 보아, 고선사지 맞은편(동편) 호안 언덕배기에 100여기에 달하는 무덤이 집중분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석곽묘도 있기는 하다만, 호석열 노출 상황과 토기류를 볼 적에 적석목곽분이 주류를 이룬다.  

기사에 쓴 사진은 이용호씨 페이스북에 게재된 것들이다. 

삼일절, 현장에서 내가 관련 포스팅을 했다.(삼일절은 내 착오이며 정확히는 2월 28일이다.) 억수로 쏟아붓는 비를 잠시 인근 농장으로 피해 비를 그으면서, 올렸다. 

그걸 봤는지 얼마 뒤 박임관 경주학연구원장이 띡 하니 얼마전 이용호씨가 같은 현장을 답사하고, 게재한 포스팅을 링크해 보내왔다. 난 이용호 선생과는 페친이 아니다. 

그 얼마 뒤 박 원장은 페이스북 메신저인지에다가 이 지역 모 고고학도와 나를 한데 묶어 그룹을 설정하고는, 이용호씨 포스팅을 다시금 전달하는 것이었다.  

폭풍우치던 삼일절 그날, 나는 오작가와 더불어 현장을 갔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호수 저 맞은편 고선사지가 최근 극심한 가뭄에 노출되지 않았을까? 노출되었다면, 탑지 흔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고선사지 석탑은 잘 알다시피 국립경주박물관 야외로 옮긴 상태다. 1970년대 덕동호 건설에 따른 여파였다. 

석탑은 몸체만 덜렁 옮겼다. 적심시설을 비롯한 하부 시설은 현장에 그대로 남았다. 이 현장을 남긴 사진은 거의 없다. 

경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사진작가 안장헌 선생이 촬영한 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한다. 

현장을 둘러보니 (무덤) 상황이 심각했다. 바로 경주시청 이채경 문화재과장한테 구두 통보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상경하는 대로 곧바로 문화재청에 매장문화재 발견신고를 하겠다고 구두통보했다. 
"정식 절차를 밟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내 경험상 좋은 게 좋다고 구두로 해서 제대로 조치되는 걸 보지는 못했다. 지자체에서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문화재청에 접수하고, 이를 통해 지자체로 하달되는 시스템이 여러 모로 나을 것이다"는 요지였다. 

폭풍우를 부러 뚫고서 가지는 않았다. 전날밤, 취리산 회맹으로 경주 모처 강연을 한 나는 경주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일찍 답사에 나서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내리 뻗었다. 

점심 먹고 화랑의집과 통일전 답사를 하고는 귀경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통일전에서 다시 합류한 오작가와 더불어 "어디가보까?" 하다간 퍼뜩 고선사지가 생각나서 가보자 해서 차를 몰았으니, 출발할 때 빗방울이 살살 돋더니, 도착 무렵이 되어서는 폭우로 돌변했다. 

폭우에 갯벌은 질퍽질퍽했으니, 비를 쫄딱 맞은 오 작가는 그날 밤 기어이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애초 그 다음날 오 작가는 바로 이 일대에 대한 드론 촬영을 하기로 했었다. 그 자료를 경주시청에 제공할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와병하는 바람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기적이었는지, 하룻밤만에 그런대로 털고 일어났다.

어제, 출근한 나는 문화재청 발굴조사과 조미순 학예연구관을 통해 매장문화재 정식신고를 접수했다. 유적 유물 개요와 관련 사진, 그리고 관련 지도를 첨부한 신고서를 접수했다. 

그 사이 오 작가는 현장 촬영을 하겠다고 그날 오후 출동했던 것이다.

한데 현장을 찾은 오 작가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포크레인이 주변 일대를 파고 있었다. 

알아 보니, 가뭄에 드러난 덕동호 주변 일대를 경주시에서 준설한다는 것이었다. 

놀란 오 작가는 이채경 과장한테 긴급 전화를 때리니, 이 과장이 관련 과에 알아보니, 뿔싸, 준설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에 이 과장이 담당과장한테 부탁해 준설 작업을 일단은 중지시켰다. 준설 작업에는 10억원인가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장마가 오기전에 긴급 조사라도 해도 유적 분포 상황만이라도 대강은 확인해 놓아야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청주 지역에서 문화재 3D스캔을 하는 정성혁 씨가 현장으로 이내 달려가서 드론 촬영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3D 기록화를 했으니, 그 성과물은 3월 11일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개했으니 다음이 그것들이다. 

 

 

내 신고가 발단이 되고, 또 지금은 공개하기 곤란하나 다른 과정을 거쳐 문화재청이 마침내 움직여 저곳을 긴급발굴하기로 하고 그 예산 3억원인가 얼마를 경주시에 배정해 내려보냈다. 
하지만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왜? 이내 비가 내려 저곳이 다시 잠긴 까닭이다. 
 
한편 앞서 이야기한 나보다 앞서 저곳을 답사한 이용호 선생은 그해 2월 19일 다음과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으니 
  
경주문화원 해설사회원들과 고선사 수몰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벌써 2년이네요. 오늘도 열심히 답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현장을 확인한 것이 2년 전이라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아무튼 그가 저 글과 더불어 게재한 현장 사진 몇 장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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