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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자색紫色, 간색間色에서 絶大의 색깔로 - 지상의 천황天皇을 표방한 시조始祖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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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논문이 공간됐다.

이건 순전히 이 대학 역사학과 임승휘 교수한테 코가 꿴 결과물이다. 

내가 백수가 되자 그가 다른 어떤 교수 분과 더불어 나를 강좌에 불러주었다. 고기까지 얻어 먹었으니 빚을 진 셈이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임 교수가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버릴 논문 하나 없냐?"고 묻는데 어찌 거절하리오?

딴데 싣기는 그렇고, 어중간한 거 아무거나 하나 달라했다. 

 

당시 나는 해직기자 신분이었으므로, 소속을 저리 표현했다. 직후 나는 임영근이 한강문화재연구원 때려 치고 나와 차린 문화재조사기관 국토문화재연구원 등기 이사가 되었는데, 등기 이사로 명함을 박고 행세하기는 그래서, 그 특임연구원인가 뭔가 하는 명함을 파고 놀러 댕겼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거, 그리고 잡지가 등재지건 아니건 그것이 나한테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나로서는 그런대로 괜찮다 생각하는 논문 집어던졌다. (2016. 2. 23) 

 
*** 

 
"다른 어떤 교수 분"이란 임 교수와 같은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유춘동이다.

유 교수는 사적으로는 나한테는 신촌 후배 되는 분으로,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며, 본래는 조선후기 소설 혹은 방각본 소설 딱지본 소설 전공으로 느닷없이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저 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이후 유 교수는 강원대 국어국문학과로 옮겨 춘천을 근거지 삼아 활동 중이다.

내가 2015년 11월, 연합뉴스에서 해직된 직후 유 교수가 저 학과 교양 강좌 하나 하지 않겠냐 제의해서, 당시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던 시절이고 해서 제목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들어간 교양강좌 하나를 맡아 생평 대학 강의란 걸 처음 해 봤다. 

 

참고문헌은 저게 다다. 실제 참고할 선행 연구도 저것 말고는 없다. 왜 씨잘데기 없는 논문들을 내 주옥 같은 글에다가 덕지덕지 붙인단 말인가?

 
 
이것도 여러 번 한 말이긴 한데, 그 배려가 참말로 고맙기 짝이 없었지만, 한 학기만에 때려치고 말았는데, 요새도 그런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교육부인지 대학 당국인지 학점 비율제를 할당해서 강제로 C를 일정 비율로 매겨야 했으니, 난 차마 이 짓을 용납할 수 없었다.

C를 받은 학생 중에서는 내가 왜 C냐 항의하는 이도 적지 아니해서, 그 항의 중에는 "출석도 꼬박꼬박하고 했는데 C가 뭐냐"는 학생도 있어, 그 친구는 수업 태도가 아주 좋기까지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시험 성적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 학기 내내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도 있었는데, 참다 못해 내가 한 번은 학교로 불러 자초지종이라도 듣고 싶었으니, 듣자니 이 친구 나이도 지긋해서 마트인가 어딘가에서 전업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 모습이 그리 딱해서 그렇다면 페이퍼라도 하나 내라 했는데, 그조차 내지 않았다. 

당연히 F를 줘야 했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어 D를 줬으니, 나중에 들으니 D를 주느니 차라리 F를 줘야 나중에 재수강 기회라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더랬다.

이런 일들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서 나를 배려한 유춘동 임승휘 두 교수한테는 못내 미안하기는 했지만, 한 학기 만에 때려치고, 자유인으로 돌아갔다. 

고위 공직자, 혹은 언론사 임원을 지내고 국가가 지원하는 그 프로그램에 따라 3년짜리 대학 교수로 가는 사람을 많이 봤고, 또 가려는 사람도 많지만, 물론 처지가 다 다르겠지만, 나야 그럴 자격이 안 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혹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내가 강단에 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늙을수록 네버에버라는 말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영문초록

 
 
여담이나 내가 한 학기만에 자리를 비워주니, 저 학과 다른 교수가 이게 웬 떡이냐 해서, 그 강사 자리를 냉큼 가지고 가서 자신이 미는 친구한테 강의 자리를 줬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뭐 그러고 보니, 내가 유 교수한테는 미안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기회였으니, 피식 웃고 말았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다.

아무튼 저 학교랑 그렇게 맺은 인연에 따라 잠깐 강의한 전력이 있고, 더구나 나는 이 학교 역사학과에서 이형구 교수님 지도로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니, 그런 인연으로 앞서 말한 그런 사연으로 저 논문을 투고했으니, 저 기관지는 여전히 원문 서비스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래서 이참에 내가 그것을 이곳에서나마 적어두어야겠기에 그것을 전재하는 김에 몇 마디를 덧붙여 둔다. 

문제의 논문은 

 
자색紫色, 간색間色에서 絶大의 색깔로 - 지상의 천황天皇을 표방한 시조始祖들, 《인문사회연구》18, 선문대학교 인문사회대학, 2016. 01, pp 109~129
 

라, 한국고대사회, 특히 건국신화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색이라는 색깔이 지닌 상징성을 탐구한 것이다.

저 자색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이 지적해 나를 오래 아는 사람들은 지겹겠지만, 그 상징성을 전론專論으로 탐구하기는 아마 한국학계에서는 저 글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나아가 등재지가 아니기에, 까탈스런 논문 요건도 내친 김에 피해갔으니, 내가 늘상 말하지만, 나는 선행연구성과 검토를 안 한다!!!

참고문헌 보면 선행 연구성과는 내가 인용할 수밖에 없는 내 선행 논문 꼴랑 두 편이 전부일 뿐이며, 나머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초학기初學記, 이 원전류가 있을 뿐이며, 이도학 책은 내가 그를 존중해서 인용한 것은 아님을 말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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