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게 묘해서 얼마전엔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완역 출간되어 며칠만에 독파했거니와 그에서 군데군데 저 《한경지략漢京識畧》이 언급되어 가만 생각하니 저 역주본 역시 얼마 전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서울역사박물관 박현욱 부장 손을 거쳐 역주본이 출간되었으니
난중에 시간 날 적에 훑어 보리라 젖혀 두었던 것인데 기왕 이리된 거 내친 김에 이것도 보리라 해서 마침내 꺼내들고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살폈으니
뭐 이런 지리지 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앉은 자리에서 그냥 훑으면 한두 시간이면 족하다. 저에서 무슨 거창한 내용을 뽑고 싶거덜랑 그런 자리는 찾아서 살피면 될 일이다.
둘을 이어주는 고리는 저 《한경지략》 저자 유본예柳本藝(1777∼1842)가 다름 아닌 유득공 아들이란 점이다. 그러니 이 책에는 저 아부지 저작이 곳곳에서 인용된다.
좁히면 《고운당필기》에서 언급한 상당한 내용이 《한경지략》에도 보인다. 박현욱 일러두기를 보면 《한경지략》 판본으로는 대략 네 종 정도가 알려진 모양이나, 단 하나도 인쇄본은 없고 모조리 필사본이라 이런저런 출입이 있다 한다. 하긴 조선후기에 목판인쇄가 가능이나 했겠는가? 돈이 얼마나 드는데?
저본으로 가람본을 고르고 판본 차이는 적출해 지적했으며 무엇보다 말미에다 가람본을 영인 첨부했으니 연구자들한테는 특히 요긴하다. 한경漢京은 말할 것도 없이 수도 한양이니 결국 수도 한양 문물지다. 지략識畧은 요즘 말하면 요약 정리 정도가 되겠으니, 나름 배운 티를 낸다고 저리 썼다.
유득공이 정조시대에 서출 우대정책에 따라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으로 임용되어 생평 열라 책만 교열하다 일생을 받쳤듯이, 그 아들 본예 또한 졸라 글자만 보다가 눈알이 빠지는 삶을 살았다. 이 고된 일을 저들이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서출의 설움을 그나마 덜어낼 자리였던 까닭이다.
이 《한경지략》도 여유가 되는 대로 간간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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