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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 고분군에는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묻힌 데가 있다.
시기로 보면 신라가 기존 적석목곽분을 벗어나 석실분으로 갔을 때니 그렇다면 부부 합장일 가능성이 크다.
합장은 왕이건 뭐건 오직 정식 부인이랑만 저승으로 동행한다.
따라서 김춘추 무덤은 실상 문명왕후랑 합장일 가능성이 크다.
문명은 누구인가? 본명 김문희, 아버지는 김서현 엄마는 만명이며 두 오빠가 있어 큰오빠가 김유신, 작은오빠가 김흠순이라 다들 한 가닥씩 나라를 말아먹은 거물이다.
아마도 625년 무렵, 김춘추 방년 22, 23세 무렵에 서른살 장성한 오빠 김유신 계략에 휘말린 김춘추는 본마누라가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정실부인을 들여야 했으니
일부일처제였던 당시에 이는 파격이었다.
김유신은 문희가 첩이 아님을 보증하고자 둘의 예식장을 포석사로 잡았다.
저 무덤이 김춘추릉인지는 요새 내가 의심하기 시작했으나 저것이 그것이건 아니건 저에는 그의 본처는 들어가지 못했다.
문명은 김법민 김인문 등의 여러 아들을 두었으니 제1처는 일찍이 고타소라는 딸을 두었고
- 남편이 두번째 정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뒤늦게 아들 하나를 두고는 일찍 사망한 듯 한데 내 보기엔 그가 바로 각간 인태仁泰 아닌가 한다.
제아무리 왕의 자식이라 해도 적서구별이 처절한 당시 사회에서 김춘추 아들이면서 문희 소생이 아닌 인태가 다른 적자들과 같은 대접을 받은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661년 어느날, 저기선 장대한 장송이 있었다.
그 자리에 만감이 교차했을 이로 김유신 문희만한 이가 있을까?
그 아들로 그의 관뚜껑 앞에서 왕위를 이은 김법민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만감 격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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