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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편액 읽어 찾아낸 경주 서악서원 역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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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 강군한테 툭 던졌다.

강구나, 탈초해라.




2분 만에 반응이 온다.


천계삼년계해
선액숭정후재경자
소진익년신축이
조명복게


天啓三年癸亥
宣額崇禎後再庚子
燒燼翌年辛丑以
朝命復揭

천계 3년 계해년(1623)에 편액을 하사받고[宣額] 숭정후 두번째 경자년(1721)에 화재로 소실되어 그 이듬해(1722) 신축년에 조정의 명령으로 다시 편액을 걸었다.


이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 안내판이 심대한 팩트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안다.

조금 더 자세히 본다.




인조 원년 1623년에 '서악서원'으로 사액된 것은 맞다.

저때 와서 임란 때 불타버린 '서악정사'가 국가공인 '서악서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역사가 싹 빠졌다.

서악서원이 다시 불이 나서 도로 세운 시점은 1721년이며, 옛 편액을 본떠 다시 '서악서원' 편액을 건 것이 그 이듬해다.

적어도 '지금의 서악서원'을 설명하려 한다면 이를 빼서는 곤란할 것이다.

생략의 묘를 발휘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편액을 탈초하면 사라진 팩트를 찾아내게 된다.

참고로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도 이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이정(1512∼1571)이 경주부윤이라는 벼슬을 지낼 때 지방 유림과 뜻을 같이하여 명종 18년(1563)에 세운 것이다.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로 세운 것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02년 묘우, 1610년 강당과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인조 원년(1623)에 국가가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서악’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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