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윤기가 흐르는 쌀밥 만들기가 쉽다.
물조절만 적당히 해서 전기밥통에 넣어버리면 알아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밥은 좀 짓는다.
옛날 학생 때 코펠 하나 들고 안 돌아다닌 때가 없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코펠로 쌀밥을 제법 잘 지었었다.
그때 느낀 것이
쌀밥이라는 게 의외로 짓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코펠은 바닥이 얇아 당시 석유버너로 밥을 하면
첫째는 뚜껑으로 김이 빠져나가면 밥이 설고,
아래의 불조절이 잘 안되면 이 역시 밥이 설거나 다 태워먹기 때문이다.
밥이라는 게 의외로 상당히 짓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박물관에서 청동기시대 이래의 토기를 보면 항상 든 생각의 하나가.
과연 저걸로 밥을 쉽게 지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단 불조절이야 어떻게 한다고 해도,
김이 빠져나가는 것을 어떻게 막았을까.
결국 저 토기 위에는 나무 뚜껑을 덮고 그 위를 무거운 돌로 누를 수 밖에 없을 텐데,
과연 저 토기가 그 무게를 견딜수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토기로 밥을 지어 뜸까지 들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이후에 언제부터인가 그 시절에는 밥을 쪘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무릎을 쳤다.
그러면 그렇지.
처음에는 밥을 다 쪄서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밥을 뜸들이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이제는 전기밥통의 시대라 뜸들이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이거야말로 쌀밥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 본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 무쇠솥이 쓰이면서 비로소 밥 뜸들이기가 퍼져나갔으리라 보는데,
무쇠의 위대함은 일반인들은 농기구나 무기보다는 쌀밥의 맛에서 먼저 느끼지 않았을까.
*** editor's note ***
이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문화사 국면임에도 간과된 까닭은 그 짐을 짊어져야 할 고고학이 양식 제조기술 타령에 빠졌기 때문이다.
왜 저 그릇을 만들었고 그것을 어떻게 썼는지 라는 가장 중대한 의문은 팽개친 체 모양 타령만 일삼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고고학은 그 뻘짓거리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토기에다가 없는 정치색깔까지 붙이는 꼴을 보면 한심해서 돌부처도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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