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전집 제18권 / 고율시(古律詩)
대머리를 자조自嘲함[頭童自嘲]
털이 빠져 머리 홀랑 벗겨지니
꼭 나무 없는 민둥산이라
모자를 벗어도 부끄럽지 않지만
빗질할 생각은 벌써 없어졌네
살쩍과 수염만 없다면
참말로 늙은 까까중 같으리
갓과 고깔로 정수리 꾸미고
말타고 마부까지 거느리고는
누른 옷차림 둘이서 끌게 했더니
길거리선 깔깔거리며 떠들어대네
행인들은 의인인가 착각하고는
쫓기듯 달려 서로 피하네
실상은 망령되고 용렬해
나라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네
배 하나만 뚱뚱해
국록만 실컷 먹었을 뿐
스스로 생각해도 얼굴 두꺼운데
남들이 조롱하지 않으리
속히 그만두고 들어앉아
누추한 꼴 더하지나 말아야지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호 (역) | 1978
髮落頭盡童。譬之禿山是。脫帽得不慙。容梳已無意。若無鬢與鬚。眞與老髡似。冠弁飾其顚。強自備騶騎。黃裾雙引行。呵喝喧道里。行者錯擬人。䟃𧽼走相避。其實乃妄庸。於國無所利。徒將一腹膰。多喫國廩耳。自尙厚顏深。人誰不嘲戲。不如速卷藏。無重己之累。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이로 보아 이규보는 나중에 나이 들어 머리가 홀라당 빠졌나 보다. 배만 뽈록했던 듯, 그 꼴이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던가 보다. 이규보는 한국사를 대표하는 고주망태. 술배 아닌가 한다.
제목 두동頭童은 글자 그대로는 머리가 아이처럼 민둥머리라는 뜻이라, 이때 아이는 갓 태어난 그때를 묘사하는 말이다. 두동치활頭童齒豁이라 해서 머리는 대머리, 이빨은 빠져 뻥 뚫렸다 해서 늙음을 자조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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