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시대 문집이나 중국문집을 보면 모르는 사람을 찾아갈 적에 명함을 주고서 기다렸다는 표현이 많다.
이 명함이 어찌 생겨먹었는지 나는 본 적이 없다. 실물로 남은 명함으로 구한말인가 외교관으로 나간 관리 명함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이 윤보선 명함은 그가 어느 시절에 사용한 것인지를 짐작할 구석이 없다. 한자 이름 尹潽善 옆에 한글표기만 붙였을 뿐
뒷면은 아예 백지상태라
이것이 당시 방귀께나 낀다는 사람들 명함 일반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왕모와 복희여와의 만남 (0) | 2021.02.05 |
---|---|
후한시대 화상전畵像磚에 보이는 서왕모西王母 (0) | 2021.02.05 |
굴포운하, 태안반도를 절단하고자 한 욕망 (0) | 2021.02.03 |
대한제국 황제의 예복 (0) | 2021.02.03 |
김재원은 왜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을 반대했던가? (2) 정부의 심장을 겨눈 전임 국립박물관장 (0) | 2021.0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