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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이순신 칼, 진위가 아니라 왜 국보여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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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근자 느닷없이 문화재청이 현재 보물인 이순신 장도長刀를 국보로 승격하기로 했다면서, 그런 내용을 공지하고 나섰으니 

골자를 추리면 이렇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조선시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던  「이순신 장도(李舜臣 長刀)」를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옥로(갓 위를 장식하는 옥 공예품)와 요대(허리띠), 잔과 받침으로 구성되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순신 유물 일괄」에는 요대(腰帶) 보관 원형 나무함인 「요대함(腰帶函)」까지 추가시켜 지정 예고한다.

또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있는 ‘잔과 받침’ 유물은 ‘도배구대’라는 이름에서 ‘복숭아모양 잔과 받침’으로 명칭을 변경 예고한다. 

「이순신 장도」는 이번에 국보로 따로 지정 예고됨에 따라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 구성에서는 빠지게 됐다.  
 

이 칼이 국보여야 하는 마뜩한 이유를 나는 납득치 아니한다.

 
 
문제의 장도는 두 자루라, 1963년 「이순신 유물 일괄」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목록에 포함되거니와 그 재원은 다음과 같다.
 
- 장도1: 칼몸 196.8cm, 칼날 137.3cm, 칼자루 59.5cm, 무게 4.32kg 
- 장도2: 칼몸 197.2cm, 칼날 137.8cm, 칼자루 59.4cm, 무게 4.20kg
- 칼집1: 칼집 길이 144.5cm, 가죽 끈 길이 87.0cm, 무게 1.40kg
- 칼집2: 칼집 길이 144.5cm, 가죽 끈 길이 92.0cm, 무게 1.24kg

그러면서 상술하기를
 
장도1과 장도2의 칼자루는 모두 나무에 어피魚皮를 감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칼자루의 일부분에 직사각형의 금속판을 댄 후 검은 칠을 한 가죽 끈을 X자로 교차해 감아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외날의 칼날은 칼등 방향으로 조금 휘어 있으며, 칼날의 단면은 칼날의 위쪽과 아래쪽의 각도를 보았을 때 가장 보편적인 육각도(六角刀) 단면이다.

장도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도 2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끈을 매달았다.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이상은 현상 기술이고, 그런 현상 기술이 국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잘 닦았다.

 
 
좀 더 보자. 

「이순신 장도」는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 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당시 칼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칼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역시 현상 기술이며, 그것이 국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다음이 국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문화재청이 들이민 것이다. 

「이순신 장도」는 다음의 이유에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

▲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다.

▲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다.

▲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명문 및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및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제작기술과 예술성 역시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다.

▲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그래서 국보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저 이유 어디에서도 그래서 국보여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이순신이 제작한 것도 아니요(제작 의뢰는 했을 수도 있으므로 제작자라고도 할 수는 있다), 설혹 그가 제작에 관여했다손 치더라고, 그리고 거기에 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이순신이 말했다는 구절이 들어가 있다 해서, 그래서 그것이 국보여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당시 도검 제작기술? 당시 도검 제작기술을 증언하는 유물이 저것 뿐이라던가? 

이순신이어서? 

그런 논리대로라면, 이순신 유배길 전체를 이순신 유배길이라 해서 왜 사적으로 지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진위 논란? 이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기록이 일치한다 해서 그것이 저 칼인지는 증명하기가 실로 난망한 까닭이다. 

그렇게 독창성 운운함을 좋아하는 업계가 어찌하여 한 눈에 봐도 일본색 완연한 저런 칼을 이순신이라 해서 없는 가치까지 억지로 갖다대고 부풀려서 국보로 삼으려는지 그 의도가 심히 불순하다. 

저 칼을 만들었다는 태귀련太貴連 혹은 태구련太九連이 나는 어째 일본인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보물로 지정된 그 자체로도 과분하다.

왜 굳이 보물에서 끄집어 내어 국보로 삼는단 말인가? 

 

*** 추보 *** 

 

이 칼이 국보가 됐다. 

 

두 자루 칼에 깃든 호국 의지…이순신의 2m 칼 '장검' 국보됐다
송고시간 2023-08-24 09:22
충무공이 지은 시구 새겨져…국보 명칭 '이순신 장도'→'이순신 장검'

 

https://www.yna.co.kr/view/AKR202308240396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두 자루 칼에 깃든 호국 의지…이순신의 2m 칼 '장검' 국보됐다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숭고한 정신과 호국 의지가 서려 있는 칼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ww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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