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는 이 두 분과 면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 분들의 활자화한 저작에만 의존하여 전적으로 필자의 느낀 바를 적어보겠다.
이윤기 선생은 번역가로 알려져 있고 안정효 선생은 소설가라고 하는데 (사실 이 분은 번역도 많이 했다),
두 양반 모두 영어가 한 쪽에 걸려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먼저 이윤기 선생에 대해 써 보자면 필자가 이 분의 저작을 처음 접한 것은 "장미의 이름"이었다.
필자는 소설류는 왠만하면 (필자가 읽을 수 있는 외국어라면의 뜻이다) 원서를 구해 읽어보려는 편인데,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이태리어 원전은 당연히 그 말을 모르므로 손도 못댔고,
영어판을 구해 읽다가 일주일만에 두 손 발 다 들었다.
일단 영어가 어렵고 이런 것을 떠나서 그 책 뒤에 숨어 있는 함의성, 역사적 배경 지식 등을 따라갈 수가 없다 보니,
영어가 되냐 안되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이해를 전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책을 덮었다.
이 책을 "제대로"읽게 된 것은 영어판이 아니라 이윤기 선생의 한글판을 통해서였다.
하나하나 정성들여 번역되고 어려운 부분은 풀어 놓은 한글 번역판을 보면서
비로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에 눈을 뜨게 뜨게 되었다.
필자는 당시까지도 국내 번역판의 경우 영어 번역판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신감이 있었는데,
이윤기 선생의 이 책을 읽어보고 종래의 선입견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장미의 이름 번역에 관해서는 이 양반 만한 것이 있을까.
아마 해외를 통틀어서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번 출판된 후에도 끊임없이 교정하였으니
번역가로서의 책임감이 정말 대단한 양반이라 존경하게 되었다.
이윤기 선생의 대척점에 있는 분이 안정효 선생이다.
이 양반은 이윤기 선생과는 반대되는 작업, 거꾸로 뒤집은 집필을 했으니,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문인으로서 자신의 한글 소설을 영문화 하여 현지에서 출판해 냈다.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이 꼭 영어번역되어 영어권 독자에게 읽혀야 하느냐는 문제를 떠나,
한국이라는 좁은 틀을 스스로의 손으로 깨보려고 한 몸부림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한다.
최치원이 도당 유학하여 자신의 저서 두 종을 당서 예문지에 실었는데,
안정효 선생의 소설 두 권도 말하자면 그런 것 비슷하지 않을까.
필자도 이제 나이 60이 코앞인데,
여기에 자주 글을 썼 듯이 이제는 "글"로 승부를 보려 하는 바,
필자가 쓰는 글도 한글이라는 벽을 넘어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쳐 인세로 돈방석에 한 번 앉아 봤으면 하는 꿈이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꼭 미국에서만 나오라는 법이 있나?
한국에서 아카데미상도 나오는 판에
한국의 작가가 풀리쳐 상을 타는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최치원 선생의 초상이라도 하나 구해 방에다 걸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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