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상제上帝께서는, 모습[形]도 없고 본체[質]도 없지만. 매일 이곳을 굽어보시고 천지를 통제하시며 만물의 조상이 되시고, 뭇신[百神]의 으뜸이 되시어, 환하고 밝게 위에서 임하시는 까닭에 성인은 이에 조심조심 밝게 섬기셨으니, 이것이 교제郊祭의 유래다.” (惟其皇皇上帝, 無形無質, 日監在玆, 統御天地, 爲萬物之祖, 爲百神之宗, 赫赫明明, 臨之在上, 故聖人於此, 小心昭事, 此郊祭之所由起也. 《춘추고이春秋考徵》 卷1)
종교사상사를 한다는 사람들은 매양 정약용이 천주교 배교 이후에 말한 저런 상제上帝가 인격신의 면모가 있다면서 이는 그가 한때 심취한 기독신의 여전한 흔적이며 따라서 이는 다산이 겉으로만 배교했음을 말해주는 증좌라 주장한다.
인격신이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랑 매양 마찬가지로 성내고 지랄하고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는 존재라는 뜻이다. 다산이 말한 저런 상제는 종래의 동아시아에선 있을 수 없는 발상이며, 그런 까닭에 그가 말한 상제는 기독신의 그것, 야훼라 한다.
기독 침투 이전 동아시아 최고 신이라는 상제가 의지가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자신은 아무런 움직임이나 말이 없는 천하자연의 주인인가에 대해선 오랜 논쟁이 있었다.
순자는 엿먹으라주의 신봉자라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하늘이 말이 있느냐 일갈했다. 그에 따라 일식이 일어나면 우연의 소산일뿐 하늘의 소행이 아니라 했다. 이는 분명 묵자에 대한 반발이었다. 묵자는 하늘을 살아있는 생물체의 절대지존이라 봤으며 사사건건 하늘의 뜻을 들먹였다.
뒤에 나타난 동중서는 인격이 있다 해서 순자가 말한 자연상태로의 하늘에 반발하면서 묵자로 돌아가 삼라만상을 하늘의 뜻으로 돌렸다. 그런 점에서 동중서는 천지天志, 곧 툭하면 하늘의 의지를 팔아먹은 묵자와 매우 흡사하다.
나는 동중서가 대표하는 춘추공양학을 묵자의 일파로 본다. 동중서는 묵자를 표절했다.
이 두 가지 흐름 중 다산은 후자에 손을 들어 상제를 해석한 데 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다산이 말한 인격신으로서의 상제는 기독 신앙 도입 이후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동아시아 고래의 유구한 상제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산은 전근대 비합리 심성주의자였다. 그에게서 절대자 저 너머 작동하는 자연법칙을 탐구하고자 하는 근대 합리주의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함에도 기독교도들은 다산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다산은 배교 선언 이후 기독신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가차없이 효용을 다한 기독신을 버렸다.
하지만 다산이 일약 근대를 선각한 예지자로 떠오르자 그 위대한 선각을 여전히 기독신의 품안에 가두고자 하는 욕망 또한 높아졌으니 그만큼 조선의 기독교도들한테 다산은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배교한 천주교도를 로욜라예수회가 창건한 서강대가 기리고자 그 건물 중 하나에다가 다산관이란 이름을 붙인 까닭을 동의하긴 힘들다. 덧붙이건대 서강대의 다산 비즈니스는 다산관으로도 모자라, 다른 건물에는 정하상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정하상은 다산의 조카로 1801년 이른바 신유박해로 순교한 이를 말한다.
다산이 겉으로만 배교했을 뿐이요 속내는 여전히 그 신앙을 버리지 아니했다는 그 욕망의 표상으로 저 상제를 부여잡는 것이며, 그 미련이 저와 같은 기묘한 공생을 불렀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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