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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제시대의 지식인: [3] 이병철 (ft: 데츠카 오사무)

by 초야잠필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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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창업자 이병철(1910~1987)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한글 위키에 의하면 선생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한학 수학을 인정받아 진주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20년 11살에 지수공립보통학교 4학년 당시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경성의 수송공립보통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심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경성 지역 학생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곧 학교 생활에 적응, 중동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학습진도가 올라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에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이병철은 공부에 열중하고 스스로 충실하게 생활했으나, 1학년 때 건강 악화로 쉽게 지치고 조금만 책을 읽어도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생겨 휴학계를 내고 온천을 찾아다니며 병을 치료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후일 회고에서 그는 "공부해서 무슨 벼슬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도쿄의 신학문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고 그 사람들의 생각도 알게 되었으니 유학생활을 더 하면 뭣하나 싶은 회의가 들었다."며 1931년에 자퇴하고 귀국하였다.



위 내용을 요약하면, 지수보통학교-수송보통학교-중동중학-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이다.

위 글에는 "중동중학"으로 되어 있지만 오기인 듯하다. 중동은 일제시대에  "중학"이 아니고 정식명칭이 "중동학교"로 "고등보통에 준하는 교육기관"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중학"은 대개 일본인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였다. 

조선인은 "고보"를 다녔고 둘다 졸업하면 중학졸업 학력이 되었지만 교육내용은 고보가 중학보다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한다. 

선생은 그 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입학했고 그 후 이를 자퇴했고 귀국하였다고 위에는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가 입학한 학교는 와세다대는 맞지만  "전문부 정경학과"였다.

 

 

이병철(李秉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그렇다면 "전문부"란 무엇인가? 

전문부라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대학에 설치된 "고등학교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학에 부설된 전문학교" 이것이 대학 전문부이다.

와세대대 전문부 정경학과라고 하면 와세다대에 부설된 전문학교 과정이라는 뜻으로 굳이 따지자면 대학과정이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일본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에 전문학교 과정을 부설한 곳이 많았다. 

가장 흔한예는 원래 전문학교였던 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기존의 전문학교 학생을 교육시키기 위해 전문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재학 중인 전문학교 학생이 졸업하면 전문부는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국대안 파동 때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의학부가 통합되었을 때 이런 방식을 취하고자 했다.

경성의전 학생을 서울대 전문부 학생으로 편제하려 했기 때문에 격렬한 갈등이 생겼고 이것이 결국 국대안 파동을 파국으로 몰고갔고, 서울대가 반으로 쪼개져 북한에 김일성대가 생기는 결과를 낳았다. 

전문부는 이런 경우 외에도 대학에서 여러 이유로 전문학교를 품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아톰으로 유명한 데쓰카 오사무手塚治虫(1928~1989)는 "오사카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의 의사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는 2차대전 말기 군의관을 속성으로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오사카대 부설 의학전문부 출신이었다.

아래는 그의 프로필이다. 


1941年、大阪府立北野中学校(現・大阪府立北野高等学校)に入学。1945年3月、修業年限短縮により北野中学を4年で卒業。旧制浪速高等学校(現・大阪大学)を受験したものの、漫画ばかり描いていたため、不合格となった]。同年7月、手塚は大阪帝国大学附属医学専門部の試験を受け、入学を許可された。医学専門部は、戦争の長期化に伴い、軍医速成のため正規の医学部とは別に臨時に大阪帝国大学の学内に付設されたもので、学制上は旧制医学専門学校であり、従って旧制中学校からの入学が可能であった。大阪大学(旧・大阪帝国大学)附属医学専門部は1951年に廃止されている。


쉽게 말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시험을 봤지만 떨어져 대신 들어간 곳이 오사카대 의학전문부였다는 것이다.

데츠카 오사무는 대학 전문부를 거쳐 의사가 되었는데 대학 전문부는 의전과 같은 것으로 우리로 치면 세브란스 의전 같은 것이다.

우리로 친다면 일제시대 세브란스 의전이나 경성의전처럼 고보 졸업 후 바로 진학하는 의전 과정인 셈이지만, 이름은 "오사카대 의학전문부"라 했다. 정확히 이병철과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일제시대 일본 유학을 한 분 중 고보를 졸업하고 바로 나갔다면 대개는 대학 전문부로 유학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경우 대학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고등학교 과정을 밟은 것이다.

연전이나 보전 등 전문학교를 마치고 유학을 하게 되면 이미 고교과정을 거쳤으므로 무조건 대학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 경우가 바로 전술한 바 있는 윤동주와 송몽규이고 이 양반들은 "대학 선과생"이었다. 

전문부=고등학교 과정 
선과생=대학교 과정이라 기억해 두면 될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일제시대의 지식인: [1] 윤동주와 [2] 송몽규

 

 

일제시대의 지식인: [1] 윤동주와 [2] 송몽규

이 두 사람은 고종사촌 지간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연전 "동주"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윤동주: 명동소학교-광명중학교-연희전문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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