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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장성은 여러 문명권에서 여러 번 있었다.
잘 아는 중국 전통왕조의 만리장성, 우리 고려시대의 천리장성 (여진족에 대하여 쌓은)
그리고 심지어는 로마가 브리튼과 게르만에서 쌓은 장성에 이르기까지.
이런 장성들은 특징이 있다.
공격에 대한 방어의 이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편과 저편의 분리이며
자기 영토안을 자꾸 침투해 들어오는 이민족과 우리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함이 더 크다는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고구려의 천리장성이 요하 유역에 저렇게 지어놓는 것이
장성의 용도에 충실한 축성이었을까?
중국으로부터의 침투는 슬금슬금 이민족이 흘러들어와 점유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대규모 군사공격에 의한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고구려 천리장성이 연변지역에 축조되었다면
이는 당시 말갈과 이쪽을 경계하고자 하는 장성 본연의 목적에 더욱 충실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고구려의 장성과 고려의 장성은 둘 다
하나는 말갈족, 하나는 여진족을 이쪽과 구분하기 위한 장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성의 목적은 피아의 구분이다. 수비와 방어용이라기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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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도 아니고 흔적도 없는 고구려 천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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