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적시適時하고 적실的實해야 하며 준열해야 하는 성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8. 30.
반응형
흰꼬리수리. 땅파는 너희가 이 친구가 문화재라는 심각성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니? by 유형재


어느 문화 부문 어느 학술모임이 주동이 된 성명 하나가 오늘 나왔다. 준비한다는 말을 들은지 좀 됐지만, 왜 늦어지냐 깅가밍가 하면서도 그래 나름 곡절은 없지 않겠지, 애로 또한 적지 않겠지, 무엇보다 사실관계 확인에서 어려움이 없지는 않을 터이고, 더불어 그것이 겨냥해야 타겟 중에 그 주동 학술모임 회원들이 집단으로 간여했으니, 이래저래 고려할 사항이 많아서겠지 했더랬다.

이쪽 업계에서는 그런 대로 그 주동 학술모임이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대표학회처럼 통용하는지라 그 무게감이 없지는 않을 듯해서, 덧붙여 그것이 다룰 사안이 그쪽 업계에서는 한창 논란이 되는 문제이니 그 성명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원칙에 뿌리 박고서 문제를 제기하며, 나아가 그를 통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지는 무시할 수는 없어 쳐다봤다.

그 어떤 성명도 때를 맞추어야 하며 핵심을 찔러야 하고, 또한 그 논법은 준열해야 한다. 성명은 외침이기에 감성에 호소하며 그런 까닭에 꼭 논리를 앞세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수미가 쌍관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 고함은 그것을 듣는 이의 갈채와 호응을 유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자 한국고고학회가 주동이 되어 발표한 성명서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재 보호·관리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라! 는 어투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고, 논리는 어불성설이며, 수미는 따로국밥이라 적시함도 없고, 적실함도 없으며, 준열함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이 성명을 촉발한 도화선은 말할 것도 없이 김해 구산동 고인돌 정비복원 사태겠거니와, 그렇다면 수미쌍관하게 이 문제로 끌고 들어가 그 문제점을 적출하고, 그 비롯된 바를 찾아서 그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열어젖히는 대문이 당장 자긍심이요 국가정체성이라, 나는 이 구절을 대하고선 당장 아! 내가 나찌 전당대회에 와 있지 아니한가 되물었더랬다.

그러한 원천으로 간주한 문화재를 정부와 지자체가 그 관리보호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물론, 도리어 앞장서 그 훼손 인멸을 가속화한다면서 그러한 사례로 김포 장릉 사태에 대한 법원 판결을 필두로 오늘의 주인공 구산동 고인돌 사태와 경주 죽동리 보물 청동기 출토지 파괴 사태에 이어 송파구에서 일어난 일을 차례로 열거했거니와

첫째, 철 지난 장릉 판결은 무슨 뜬금포이며, 둘째 죽동리 유적은 무슨 듣보잡인가 하는 의구심이 증폭했더랬다.

땅 파는 게 문화재 행정인 줄 아니?



장릉은 기차 떠난 지 오래다. 더구나 그 사태가 한창 논란 와중일 때는 일언반구 논급이 없다가 왜 지금 와서야 성토하고 나선단 말인가? 솥뚜껑 보고 헐떡이는 더위 먹은 소 같고 떠난 기차 사라진 저 지평선 너머로 하염없이 짓어대는 개 같다.

죽동리? 죽동리가 뭐야? 죽동리가 파괴됐어? 그래? 그만큼 중요해? 준열하고 적시해야 하며 적실해야 할 이 성명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만큼 죽동리가 그토록 중요한 데란 말인가?

구산동 사태와 관련해서는 "김해시가 복원·정비하는 과정에서 되레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해버렸으니 부끄러워 고개조차 들 수 없다"면서 " 그런데도 경남도와 김해시는 재발 방지 노력은커녕 네 탓 공방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하거니와, 이 대목을 접하는 내가 참담하기 짝이 없다. 어찌하여 한국고고학 내로남불 타령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는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성명은 이런 사태들이 재발함을 막기 위한 장치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다음 세 가지를 요구하고 나섰으니

첫째 매장문화재와 발굴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이 가장 높은 문화재 발굴조사 담당자가 문화재 수리, 보수, 보존, 복원, 정비 사업에 반드시 참여하며

둘째 자격 요건을 갖춘 문화재 전문인력을 의무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에 대한 '문화재 보호·관리 책임공무원제’를 입법·시행하고

셋째 문화재 보존, 보수, 정비, 복원, 활용 시 해당 문화재 전문가를 위촉한 ‘문화재 책임감리제’를 입법·시행하라

는 것이 그것이다.

매장문화재? 화석이 매장문화재니? 문화재가 뭔데?



미안하지만 다 틀렸다. 다 논점을 빗나갔다.

첫째 발굴과 복원정비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전자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그 일원으로 자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발굴을 전문으로 하는 고고학도가 무슨 복원정비 전문가라는 말인가? 고고학도가 복원정비 전문가이기도 하다는 말이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며 기이하기 짝이 없다.

둘째 중 앞 부분은 하나마나 한 말이라 빗자루 들자 마당 쓸라 한 데 지나지 아니해서 문화재 전문인력 확충, 특히 지자체의 그것은 이미 지자체 학예직들과 문화재청이 입법화를 추진하는 단계라, 그것을 추진할 때는 일언반구 힘 하나 보태주지 않다가 지금 와서 숟가락 하나 얹겠다는 심산인가?

'문화재 보호·관리 책임공무원제’는 또 무슨 개뼉다귀인가? 모든 행정에는 그 담당자가 있기 마련이고 문제가 있을 때는 그가 책임지기 마련이라 하나마나 한 말이다.

셋째 문화재 보존, 보수, 정비, 복원, 활용 시 해당 문화재 전문가를 위촉한 ‘문화재 책임감리제’를 입법·시행하라는 요구 또한 무슨 개뼉다귀인가?

해당 문화재 전문가가 대체 누구를 말함인가? 전후 문맥으로 보아 민간 영역에 있는 사람을 말하거니와, 민간인이 무슨 국가나 지자체 사업의 책임 감리를 맡는단 말인가? 지가 무슨 권한으로?

고고학 교수들 투잡 뛰겠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컨대 저 성명은 수미일관하게 언어도단이다. (2022. 8. 29에 쓴 글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