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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전시과제도는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가

by 초야잠필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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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토지제도는 전시과제도로 공전인 국유지에 대한 수조권을 관리들 녹봉으로도 나눠주고 군인들 월급도 주고 했다는 건데, 중앙행정기구의 관리 월급이나 줬으면 모를까 이게 전국의 토지를 대상으로 제대로 시행되었을 것 같지가 않다. 

국가가 지방 아전 하나 제대로 월급을 못줘서 자원봉사로 행정기구를 돌리던게 조선시대였는데, 고려시대라고 뭐 딱이 달랐을까? 전시과제도라고 포장된 국가의 "공식적"토지제도의 바깥에는 광범위한 은결, 국유지로 위장된 사전 등 토지 사유권에 입각한 토지들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예를 들면. 

북한역사를 나중에 기전체로 남기면서 식화지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거기다 장마당 경제를 쓰겠나? 배급제만 줄창 기술하고 끝낼것이다. 노동자는 백미 몇 그램, 교사는 백미 몇 그램... 이걸 가지고 죽어라고 연구해 봐야 북한의 경제의 실상을 들여달 볼수 있을리가 없다. 

고려의 전시과제도는 딱 북한 배급제다. 실제로 작동했던 기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래못가고 망한. 

고려의 사유토지는 딱 북한 장마당 경제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만 아무도 내놓고 이야기 못하고 심지어 식화지에도 못 올리는. 

그런데 장마당 경제가 북한을 실제로 지탱하는 경제의 중심축이라는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기전체 북한사에는 남지 않겠지. 그 뿐이다. 

전시과제도라는 건 필자가 보기엔 고려왕조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냐, 그 뜻이다. 전국을 일원화 지배해서 토지를 전부 파악하고 나이가 차면 땅을 떼주고 죽으면 국가가 돌려받는다..

이런 시스템이 정말 작동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당신은 순진한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태종대 그 서슬 퍼렇던 시대에도 호패를 차고 다니라 했더니 세월이 흘렀으니 새로 태어나고 죽어 분명히 반납하거나 발급받아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필시 남의 것 빌려차고 다는다는 푸념을 했었다는데. 국가 전체의 토지를 파악하고 농민에게 이 땅을 줬다가 받았다가 한다? 

21세기 북한에서도 안되는 제도가 고려시대에 되었을 리가 없다. 

전시과제도의 바깥에는 고려판 장마당 경제에 해당하는 광범한 토지의 사적 소유가 존재했음이 틀림없는데, 공적인 차원에서는 재주좋게 감추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어떻게 사료에 남아 있겠는가? 

왕께서 토지제도를 제정하여 공전(公田)을 제외하고는 신민에게 각각 차등 있게 하사해주셨습니다. 관직에 있는 자가 탐욕을 부려 공전과 사전(私田)을 빼앗아 이를 겸병하니, 한 집안의 기름진 땅이 여러 주군에 걸치게 되어 나라의 부세가 줄어들고 군사의 양식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유사에 명하여 공문서와 대조해보아 무릇 빼앗긴 토지는 모두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십시오.

先王制土田, 除公田外, 其賜臣民各有差. 在位者貪鄙, 奪公私田, 兼有之矣, 一家膏沃彌州跨郡, 使邦賦削而軍士缺. 惟陛下勑有司, 會驗公文, 凡所見奪, 悉以還本.  (최충헌의 봉사 10조) 

한집안의 기름진 땅이 여러주군에 걸쳐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일본사에서 흔히 보이는 장원이다. 

배급제야 말로 북한의 전시과제도이자 과전법체제이다. 기전체 북한사 식화지에는 배급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들어갈 것이다. 장마당 경제따위는 식화지에 쓸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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