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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우습게 볼 수 없는 고려 전기의 문화적 역량

by 응도당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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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최충 이야기를 적었지만, 고려시대에는 송과 상당 부분 동시기에 관심사를 공유하여 동기화하고 있었던 것 같은 징후가 많다.

우선 앞에서 쓴 것처럼 11세기가 되면 고려는 과거제가 안정적 운영 단계에 접어들어 전형적인 사대부사회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본다.

고려전기에 사학 12도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학 12도가 왜 나왔겠는가? 결국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2-3년에 한번씩 20~30명씩 급제자를 계속 낼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은 결코 얕보기 어렵다.

실제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베트남을 보면 급제자 수도 들쭉날쭉이고 고려처럼 안정적인 급제자를 상당기간 내지 못했다.

과거제도가 안정화한다는 것은 그 배후에 식자층이 굉장히 두텁게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중국대륙과 실시간으로 교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몽골 간섭기를 제외하면 고려전기야말로 중국의 문화적 수준과 큰 차이없이 동기화하여 작동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본다.

팔만대장경이라 하지만 판각은 8만장이 아니라 앞뒷면, 16만장에 초조대장경, 의천의 교장 판각까지 생각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판각이 고려 전기에 이루어졌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 시기에 금속활자가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왕조의 시대가 반복되면 초창기 문물 정비에 대해 둔감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려전기의 문물 정비와 부흥 수준은 한국사 전시기에서 손에 꼽을 만한 시기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기 고려 식자층은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대륙의 시인묵객과 동기화하였는데, 알다시피 김부식, 김부철이 태어나 이름을 그렇게 지을 때 소식과 소철은 여전히 중국에 살아 있을 때였다.

고려전기라 하면 일본에는 대략 가마쿠라 막부 때가 되는 셈인데, 이 시기까지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역량의 차이는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고려전기 "사대부사회"가 뭔가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색칠되어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 사회가 무신정변으로 인해 좋지 않은 모습으로 갑자기 끝나버렸다는데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끝났다고 해서 이 위대한 시대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초조대장경. 고려전기의 문화적 수준은 대단한 것으로 재평가 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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