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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소위 개혁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인물 중 도대체 어느 구석이 개혁적이라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둘 있는데,
첫째가 조광조요, 둘째가 정조이다.
이 두 분은 내가 아는 한 성리학 원리주의자에서 단 한 발자욱도 이탈한 양반들이 아니다.
한 분을 굳이 더 추가해 본다면 다산도 그런 면이 좀 있다고 보는데, 필자가 지난 1년간 참여하는 강독회에서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산 경학이 개혁적이라면 도대체 어떤 구석이 그렇다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분명히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자의 지식이 얕아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을 수도 있겠는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오랫동안 항상 의심스러웠던 이야기를 적은것이니 양해 바란다.
정조와 다산. 이런 분들은 그냥 성리학자의 틀에서 이해하는 게 훨씬 명쾌한 분들이지 근대의 선구라던가 성리학에서 이탈한 개혁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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