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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사는 왜 만주를 잃었는가

by 초야잠필 202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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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당의 침입으로 한번 만주를 상실하고, 뒤이어 만주일대에 세워진 발해가 요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완전히 만주는 한국사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사건에서 생각을 해방시킨 다음 아래 그림을 보자, 중국의 기후변동 도표이다.

한반도와 만주도 비슷하게 평균기온이 움직이고 있었다고 본다면,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은 삼국시대 후반기와 통일신라시대 초반에 피크를 찍었다가 그 후 점점 추워지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농사를 제대로 짓는 한계선도 점점 남쪽으로 내려갈수 밖에 없다. 송화강유역에서 오곡 농사를 짓던 부여는 고려시대가 되면 그 농사꾼들은 모두 어디가버리고 사냥꾼만이 횡행하는 땅이 되어버렸을까?

이처럼 "농경이 후퇴"한 현상은 한국인이 만주땅을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인가, 그게 아니라면 농경이 후퇴했기 때문에 한민족이 만주땅을 상실한 것인가?

한국사가 고려시대 이후 북진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우리 생각보다 북진에 대한 의지는 조선시대까지도 매우 강고하였다. 북진정책이 고려시대만의 정책이었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 조선시대는 북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북진을 할 여력이 안되었다는 것이 옳다.) 일진일퇴의 난관에 줄곧 직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북방개척을 해도 농사꾼들을 사민할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부여는 송화강 유역에서 그 옛날 어떻게 오곡 농사를 짓고 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일까?

발해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높은 위도에서 문명을 유지할수 있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따듯하여 그 지역도 농사가 어느정도 이루어져야 가능한 한 것 아니었을까?

한국사 판도의 변화. 정치적 사건을 잊어버리고 기후의 변화만으로 지도를 보면 농경의 위축과 한국사의 지리적 위축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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