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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Establishing Joseon Capital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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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漕運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1394년(태조 3) 8월, 태조가 한양을 왕도로 삼고 한 말입니다. 이내 종묘·사직과 궁궐이 들어서니 비로소 임금의 교화敎化와 정령政令이 나가며,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의 서울 한양으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었다 다시 흩어지고, 육로를 따라 갖가지 물품을 실은 말과 수레, 물길을 따라서는 배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은 조선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국·일본·만주·유구에서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고, 또 그곳으로 사신들을 보내는 곳 역시 한양이었습니다. 외국의 물품이 한양으로 들어왔고, 조선의 물품이 한양에서 나갔습니다.

한양은 문명과 문화가 들어오고 나가는 기착지이자, 출발지였습니다. 또한 한양은 사상과 학문, 예의와 예술을 선도하고, 음식·복식·주거 등 생활문화의 전범을 만들어내는 곳이었습니다.

한양-한성-서울은 조선의 수도首都이자 수선首善이었습니다.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Capital

"Having seen the lay of the land, this site is suitable for the royal capital. It has access to the sea and is centrally located in the kingdom, bringing convenience to people's lives."

In 1394, King Taejo uttered these words upon seeing Hanyang. Soon after, the Main Palace compound, Sajikdan (Altars to the Gods of Soil and Grain), and Jongmyo Shrine (Royal Ancestral Shrine) were built, thereby cementing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royal residence and garnering the loyalty of the people.

In addition, products from around the entire kingdom were brought to Hanyang, the new Joseon capital.





朝鲜王朝时代首尔 : 建立王都
“今观此地形势,可为王都。況漕运通道里均,于人事亦有所便乎! (现察看此地区的地形,是可以定王都之处。漕运通行无阻, 通往全国的距离也均等, 适合人居, 颇为便利!)” 这是1394年8月, 太祖决定将汉阳定为王都时说过的话。接着建造宫殿和宗庙社稷,推行王道教化,百姓聚居于此地,效忠朝廷。朝鲜王朝各地的物产开始集散于首都汉阳, 汉阳成了朝鲜王朝的经济中心地区。汉阳先导学问和礼仪、艺术;创立饮食、服饰、住宅等生活文化的典范。






朝鮮時代の首都、 王都を構える
「この地の形勢を見ると、王都を構えるのにふさわしい地の利を得ている。水運に適した川を有している上、国の中央に位置していることから、国民が生活する上で便利な地域だ。」 1394年8月に朝鮮王朝を建国した初代王・太祖(テジョ)が漢陽(ハニャン)に王都を構えて語った言葉である。やがて、宮殿や宗廟社榎が建立され都城も築造されて、漢陽には多くの人々が住むようになった。また、全国から様々な名産物が集められ、朝鮮経済の中心地として発展した上、学問や礼儀作法、芸術をリードする地域として、衣食住など生活文化を築き上げた。






수도를 정하다

1394년 한양 땅이 새로운 도읍지로 정해졌습니다. 새 수도는 우리의 옛 전통과 풍수지리, 그리고 유교적 이념을 겸비하여 건설되었습니다.

먼저 우리의 성곽 전통에 따라 산세에 의지하여 도성을 건립하고, 그 안에는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좌조우사左祖右社’의 이념에 맞추어 궁궐과 함께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였습니다.

수도의 성곽은 백악산을 비롯한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쌓으면서 평지 부분을 연결하여 완성하였습니다. 궁궐은 백악산 기슭의 명당자리에 건설하고 좌측에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를, 우측에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두었습니다.

아울러 육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을 궁궐 앞에 배치하였으며 시전은 동서를 연결하는 대로변에 건립하였는데, 이로써 한양은 조선의 수도로서 500년 역사를 담을 도시의 기본 틀을 갖추었습니다.





Hanyang: The Joseon Capital

In 1394, King Taejo decided to have a new city built on the site of Hanyang, and this remained the capital through the end of the dynasty.

Hanyang was built in accordance with ancient Korean traditions, geomantic principles and Confucian ideology.

With the relocation of the royal capital, the palace compound for the king was constructed alongside the initial city walls made from compressed earth.

The seat of the government was temporarily relocated to Gaeseong, the old Goryeo capital, during the reign of the second monarch, Jeongjong, but returned to Hanyang during the reign of Taejong.

He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second palace compound, Changdeokgung Palace, and established Sijeon (licensed stores) along the main street. During the reign of Sejong, the city walls were replaced with stone walls.





首都汉阳的建设

1394年定汉阳为新都。新都建设遵循了韩国的传统、风水地理和儒教思想。根据韩国城郭传统,依山势建都城,内部按照《周礼》〈考工记〉记载的左祖右社理论,与宫殿一同修建了宗庙和社稷。首都城郭沿白岳山等内四山山脊修筑,并完成了与平地部分的连接。国王的宫殿建于白岳山山麓的风水宝地,左边是祭拜祖先的宗庙,右边是祭祀土地神、粮食神的社稷。六曹等主要行政机构设在宫殿前面,市廛建在横贯东西的大道路边。朝鲜王朝之都汉阳是充分考虑了昔日传统和儒教合理性而建的首都。




首都漢陽の建設

1394年、漢陽が新しい都に決まった。新しい首都は、昔からの伝統や風水、儒教の理念を総体的に考慮し建設された。まず、城郭建造の伝統にのっとり山容に沿って都城を築城し、都城内においては『周礼』の「考工記」に記されている「左祖右社」の理念に基づいて、王宮・宗廟・社稷を配置した。都の城郭は、白岳山をはじめとする内四山(白岳山・木覓山・仁王山・駝駱山)の稜線に沿って積み上げられ、山と山の間の平地を繋いで完成させた。王宮は白岳山の麓の吉祥の地に建立し、左側には歴代の王と王妃の位牌を祀った宗廟を、右側には土地と穀物の神を祭る社稷を配置した。また、六曹をはじめとする主な官庁は王宮の前に配置し、東西に走る大通り沿いには政府主導で設置された御用商店の市廛が開設された。朝鮮の首都漢陽は、伝統と儒教的合理性が融和されて建設された首都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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