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언급한 것처럼 조선에는 교회가 선교사 없이 자생하여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주교가 되고 그가 10명의 신부를 임명하여 이들이 교회를 꾸려 나가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2년간 지속되었는데 이를 천주교에선 "가성직 제도"라 한다.
앞에서 쓴 것 처럼 이 가성직제도는 한국 천주교가 세계에 내세우는 자랑이다.
선교없이 교회가 자생한 예는 전무후무한 것으로 대단한 사건으로 여기며,
필자 역시 이 사건은 천주교를 믿느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 자체만으로도 세계사적 시각에서 다시 한번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조선에선 전래된 기독교 관련 서적을 탐독 한 사람들이 이승훈을 중국으로 보내 세례를 받게 하고,
그가 가지고 귀국한 서적등을 연구하여 최종적으로 자체적으로 주교와 신부를 임명하여 교회를 꾸려 나가는 "가성직제도"로 발전하게 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여기서 한가지 상상을 해보자.
만약 "자생한 한국교회"가 접촉한 교회가 천주교회가 아니라 개신교회라면 이 자생한 교회는 어찌되었을까?
이 경우에도 이 교회는 사도전승이 없는 것으로 선언되고 성직과 성사는 무효화 되고 정식 신부의 파견과 같은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을까?
어떤면에서는 주문모 신부가 파견되기 이전의 한국교회는 어찌 보면,
가톨릭도, 개신교도, 그 무엇도 아닌상태였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선교사가 전도도 안했는데 교회가 생겼다는 조선에서 "가성직 제도"까지 만들어 주교, 신부까지 그 안에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북경의 가톨릭 성직자들은, 내심 이 "교회"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공포도 함께 느끼지 않았을까?
사도전승이 끊어지고, 교황의 수장권을 모르는 교회란 결국 가톨릭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에 가성직 제도가 생겨난 후 이를 취소하게 하고 서둘러 신부 (주문모 신부)를 파견한 이면에는 이 "조선 교회"에 대한 가톨릭 측의 불안감도 아마 한몫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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