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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배교와 순교 사이

by 초야잠필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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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초기 교회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다. 

이것은 천주교 신자라면 쉽게 이야기 하기 어렵다. 

오직 어느 정도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말하자면 역사학의 눈에서만 이야기 가능한 내용들이다. 

한국천주교가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 

외부로부터의 전교 없이 교회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하는 부분이다. 

한국천주교가 또한 곤혹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 

정작 그런 "한국교회 신앙의 아버지"들 중에는 배교자가 있는 까닭이다. 

정약용도 그런 대열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고 

한국사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도 배교자에 속했다. 

심지어 한국교회의 사실상의 창립자로 여겨지는 이벽 조차 배교했다. 

이 부분은 한국천주교회가 담담히 이야기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이승훈은 배교와 신앙으로의 회귀를 반복했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교회사나 신앙의 입장에서라면 어렵겠지만, 

교회와 아무런 빚이 없는 역사학이라면 이런 경우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은 배교와 신앙으로의 회귀를 반복한 것인가? 이들의 행동은 서구적 전통의 기독교와 동아시아 전통의 성리학 사이를 오갔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혹시 이들에게 있어 천주교와 성리학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하다고 느껴졌던 (혹은 그렇게 오해했던) 것은 아닌가? 이들에게 있어 천주학이란 그렇게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양명학과 성리학을 오간 정도의 차이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만약 이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면 성리학과 천주교의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차이가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성리학으로 중무장한 조선의 유학자 사이에서 천주교로 귀의한 사람이 대거 배출되었다는 점을 심상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성리학이야 말로 한유와 맹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단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한 교리였던 탓이다. 

그렇게 중무장된 성리학자들은 왜 천주교로 귀의한 것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것을 "신앙의 기적"으로 간단히 설명해 치워버리는 한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다.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이 개신교의 모습을 띤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교회의 교리에 대한 오해"로 간단히 설명해 버리고 나면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한국 천주교회사가 교회의 손에서 자유로와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일차적으로 철학사의, 그것도 무지하게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철학사의 영역이지, 

한국 천주교회가 철옹성을 두르고 신앙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런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가 보기엔-. 

초기 한국 천주교의 개창자들이 성리학자에서 무더기로 나온것은, 

일차적으로 천주교와 성리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유사성에 기인한다. 

고도의 철학체계인 성리학으로 중무장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왜 천주교에 집단으로 귀의하였는가? 이는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절대로 규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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