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군 무덤은 사비시대 백제 여타 고분이랑 마찬가지로 구조로 보면 모두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다. 나아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석실石室은 편편 넓적한 돌인 판석板石으로 마치 상자처럼 짜서 만들었다. 횡혈식 석실분이란 무덤방은 돌로 쌓되, 바깥에서 무덤방으로 통하는 길을 별도로 마련한 무덤을 말한다. 그 무덤을 측단면으로 보면, 무덤방으로 통하는 무덤길이 마치 수평을 이루는 까닭에 ‘횡혈식’이란 수식어를 단다. 횡橫이란 수평을 의미한다.
한자어로는 흔히 ‘연도羨道’라고 하는 무덤길은 거의 예외 없이 무덤방 남쪽으로 연결된다. 하긴 무덤 역시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남향을 하고, 북쪽에는 대체로 기슭이나 구릉 쪽이니 남쪽으로 마련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다만, 무덤방 남쪽 벽면 중에서도 무덤길 연결 통로를 중앙에 마련하느냐, 아니면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이나 동쪽으로 몰려 있느냐 하는 차이를 빚기도 한다. 서쪽으로 몰려 있으면 ‘서편재西偏在 연도羨道’니 하는 표현을 고고학도들이 쓰는데, 알고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다.
무덤방은 현실玄室이라 하는데, 검은색〔玄 혹은 黑〕 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죽음과 연동한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이런 풍광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기는 하지만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을 현상 혹은 인화하는 사진관 암실暗室을 떠올리면 현실에 대한 이해가 쉽다. 한데 이런 현실을 돌로 쌓아 올렸으면 석실石室이라 표현하곤 한다. 이 역시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횡혈식에 대비되어 별도 무덤길 없이 곧바로 땅을 파고 내려가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시신을 묻으면 ‘수혈식竪穴式)’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당연히 이런 수혈식은 무덤방으로 통하는 입구가 없다. 구덩이만 파고 그대로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굳이 입구가 있다면 천장이 그것이다. 나아가 횡혈식 무덤 중에서도 무덤길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은 채 무덤방 앞쪽 벽면에 바깥으로 통하는 대문만 마련한 것을 횡구식橫口式 고분이라 한다.
한데 이런 용어도 엄밀히 살피면 문제투성이다. 횡혈식과 수혈식에서 말하는 ‘혈穴’이 다른 대상을 지칭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이해했는지 자신은 없지만 횡혈식에서 ‘穴’은 무덤방이 아니라, 그로 통하는 무덤길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데 같은 ‘혈’인데 수혈식 고분에서는 무덤길이 없으니, 당연히 이는 시신을 직접 안치하는 공간인 구덩이를 말한다. 같은 말을 쓰는데도 어찌 이리도 지칭하는 대상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반면 횡구식이란 외부에서 무덤방 입구로 통하는 대문 시설에 중점을 둔 표현이다. 말 그대로 풀면 무덤 주둥이〔口〕를 한쪽 측면에다가 수평〔橫〕 형태로 마련했다는 뜻이다. 무덤을 구조로 구분하려면, 그 분류 기준이 달라서는 안 된다. 길이를 재는데 어떤 것은 미터법으로 쓰고, 다른 데는 피트법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저 횡혈식, 횡구식, 수혈식이라는 구분은 요컨대 중구난방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그것이 어떻건 고고학도들이 쓰는 이런 무수한 한자어가 어쩌면 가장 대중적이어야 할 고고학을 일반에는 유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어려운 한자어들을 남발해야 그들이 있어 보이는지, 아니면 그렇게 해야 그네들이 그들의 고유 영역을 지킨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그들을 20년 정도 지켜본 나로서는 아무래도 후자 같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201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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