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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당시唐詩, 그것이 극성을 구가한 때가 정확히 절도사 시대의 개막, 혹은 그 본격적인 전개와 궤를 같이한다.
중앙이 파열음을 내지 않았으면, 절도사가 없었으면
이백도 없고, 두보도 없으며
한유도 없고 유종원도, 백거이도, 원진도 없었다.
중앙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6. 1. 3)
***
우리가 아는 당시唐詩란 정확히는 이백 두보의 시대 이후를 말한다.
이두만 해도 그들 자신은 불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위대한 문학의 자양분은 안사의 난이었다.
이 난리통이 없었으면 이두는 없다.
문학은 고통이 배양한다.
***
절도사들이 구축하는 번진의 시대를 어찌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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