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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중용, 유가가 앞세운 불가의 관념철학 대항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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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은 애초에는 예기禮記를 구성하는 하나의 편에 불과한 이 코딱지 만한 것을 왜 송대宋代에 이르러 정이 정호 형제와 주희가 따로 떼어내 그것을 經으로 격상해야 했는지는 오로지 당시의 시대상만 설명할 수 있다. 

저들은 이것이야말로 불가와 도가에 맞설 수 있는 관념철학의 대항마로 보았다. 

돌이켜 보면 공자를 비조로 삼는 유가는 실천철학, 현실의 도덕철학에 철저히 기반하고, 그것이 최대 강점이었지만, 또 그것으로써 불가 도입 이전에는 노자와 장자가 대표하는 현학에 맞설 수 있었지만, 

불가가 중국땅에 상륙하고서는 판판이 깨졌다. 

그 웅대한 사변의 철학 앞에 유가는 그것을 피안의 잠꼬대로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세우는 우주론 인식론 형이상학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송대 성리학이 왜 입만 열면 불가를 겨냥했는지, 그 단초는 전대의 한유가 열었으니, 

그 처절한 위기감을 알아야 중용이 떨어져 나온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중용언해

 

철두철미 공자의 말로 짜깁기한 중용은 같은 예기의 편에서 독립한 대학과 마찬가지로 

실로 생뚱맞게도 시종일관 사변으로 점철한다. 

중용이 독립함으로써 비로소 유가는 불가에 치고 노장을 앞세운 저 화려한 언변 앞에서 주눅들던 처지에서 겨우 벗어나 숨구멍을 마련했으니, 

중용의 독립은 곧 유가의 독립선언이었다. 

나아가 송대 성리학은 또한 맹자의 재발견이었다. 

한데 맹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성리학 이전과 이후가 판이하다. 

그 이전 맹자는 논어나 매양 한가지로 실천철학, 생활철학이었다. 

한데 성리학은 그에서 형이상학과 관념론을 발명했다. 

원문 전체를 뒤져봐야 몇군데 되지도 않고, 그나마 맹자가 말하는 본의는 별것도 아닌 心을 형이상학과 관념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뜬구름 잡는 얘기를 시작한 것이다. (201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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