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사는 참가자 숫자에 성패가 달렸다. 제아무리 성대한 잔칫상을 차려도 손님이 없으면 꽝이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좋은 상을 차렸다 해도 그래서 모름지기 부르지도 않은 사람까지 바리바리 와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행사가 무미건조하거나, 혹은 그 잔칫상이 볼품 없을수록 동원과 할당이라는 강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숙명이 있다. 일단 쪽수는 채워놓고 봐야 하는 까닭이다.
관공서나 기업 같은 집단에서 이런 짓을 자주 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직원이나 협력업체를 동원한다는 사실이다. 목줄이 걸린 사람들이니 일단 가서 쪽수는 채워준다.
사람 살다 보면 어찌 자기가 좋은 일만 하겠는가? 당연히 이런 내키지 않는 자리에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을 모으기 힘들다는데, 더구나 그네가 내 목줄을 쥐고 있다는데 어찌 가만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강제동원에 응한다.
한데 문제는 이게 품앗이가 아니라는 데서 비극이 발생한다. 상대적인 약자인 내가 그런 자리를 마련했는데, 내가 언제나 오라면 가는 그런 관공서나 상위 기업은 내가 초대할 수도 없을뿐더러, 초대해도 오지 않는다. 품앗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가기 싫은데, 혹은 그닥 내키지 않는데, 그런 자리 가봐야 쪽수만 채워주는 그런 꿔다논 보릿자루에 다름 아니다. 이럴 때 기분 더럽다.
내가 주인공이기는커녕 가서 보면 나 하나 빠진다 해서 하나도 티도 나지 아니하는 그런 자리다. 한데 그런 자리에 꾸역꾸역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작동한다.
가서는? 나 이런 데 와서 대접 받았어요 하고 알린다.
내가 보건대 이토록 한심한 작태 없다. 알고 보면 암것도 아닌 자리에,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자리에, 단순히 쪽수 채워주러 간 꿔다논 보릿자루에 지나지 않음에도 마치 주체가 된양,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대접이나 받은양 포장하는 내 신세 처참하지 아니한가?
모든 관계는 호혜평등해야 한다. 내가 가서 쪽수를 채워줬으면 저짝에서도 우리가 부를 때 와서 쪽수를 채워줘야 한다.
강제동원? 제국주의 일본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강제동원이라는 폭거가 매일매일 일어나는 중이다.
같은 강제동원이라 해도 내가 가서 그 때문에 그쪽이 더욱 빛나는 자리, 그런 자리를 가야 한다.
가오 세워주는 자리, 그런 자리를 가야 한다.
그런 자리에 불려간다. 로마 체류 기간 중 어떤 자리가 있는데 와 줄 수 없느냐 해서 기꺼이 간다 했다.
내가 간다는 그것만으로 그쪽에서 가오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런 자리는 기꺼이 가야 한다.
가겠다는 통보에 그쪽에서 고맙다 하는데, 그 고맙다는 말이 나로서는 더 고마웠다. 나는 그쪽에서 진짜로 고마워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다.
그런 믿음이 없는 자리, 그런 자리는 나를 피폐케 한다. 소모품이 되는 나를 내가 거부하지 누가 거부하겠는가?
#대접 #강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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