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품질 개선을 위한 문화재청의 역할
김태식(연합뉴스)
목차
Ⅰ. 0.19%의 힘
Ⅱ. 규제완화의 희생물
Ⅲ.“문화재 문제의 근원은 조사단”
Ⅳ. 문화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
Ⅴ.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보호에 나서라
Ⅱ. 규제완화의 희생물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지 두 달이 채 안 된 2008년 4월 30일, 그 초대 청장으로 임명된 고고학도 출신 이건무가 이끄는 문화재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을 제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한다. 그에 의하면, 최장 140일까지 걸리는 문화재 조사절차와 그 처리 기간을 그해 안으로 40일내로 단축하고, 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설립요건을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문화재청은 “최근 급증하는 매장문화재 지표․발굴조사 수요에 대한 수급 대책과 복잡한 조사기간 및 절차의 간소화, 그리고 불투명한 관련 규정의 정비 방안 등이 이번 개선안의 주요 골자”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르면 지표조사 처리기간, 발굴조사 허가기간, 그리고 발굴결과 처리 기간 등 당시 문화재 조사 처리에는 최장 140일이 걸렸으나, 개선안이 시행되면 시․군․구를 거치도록 한 절차 등을 폐지함으로써 그 기간이 40일로 대폭 축소된다.
더불어 문화재위원회 심의 방식도 월 1회 개최에서 수시 개최로 바꿈으로써 문화재 조사에 따른 사업지연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제완화를 내건 이 개편안은 실은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설립을 위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는 데 또 다른 핵심이 있었다. 그에 따라 당시까지는 11명 이상을 갖추어야 하는 관련 조사원 구비 요건은 7명 이상으로 축소됐으며, 그에 종사하는 조사인력의 학력․경력 요건 역시 한 단계씩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향후 중부․남부 2개 권역에 출토 문화재 보관창고를 건립, 관련 시설을 갖추지 못한 기관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 했다. 이렇게 되면 당시 1천880여 명으로 추산되는 고고학 조사 인력을 더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예상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해당 광역자치단체 관할 구역으로 제한되던 지자체 전문 조사기관의 활동영역 제한을 폐지하고, 지자체 설립 조사기관의 해당 지자체 발주공사에 대한 조사 참여 제한도 폐지키로 했다.
예컨대 경기도가 설립한 당시 기전문화재연구원(현 경기문화재연구원)은 경기도가 발주하는 사업장에 대한 발굴조사에 참여할 길을 열게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런 제도개선을 통해 매년 약 250억 원에 달하는 조사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2007년 현재 연간 발굴조사 비용은 2천304억 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소위 이 규제완화가 실은 이명박 정부가 공약으로 예고한 사대강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위한 ‘문화재 무장해제’ 사전 조치였음이 이내 드러났다. 애초에는 이들 사대강을 연결한 운하 건설로 시작한 이 사업은 결국 격렬한 반발에 부닥쳐 일정 부분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칫 대규모 공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문화재 제거 작업’이라는 숙명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현행법에 묶인 정부가 그런 단기간에 저런 큰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무리수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조치가 불러온 파장은 너무나 컸다. 조사기관이 우후죽순마냥 늘어났고, 그에 따른 조사기관간 발굴 입찰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더없이 격화했으며, 그에 따른 덤핑 낙찰 논란까지 일었다.
이는 결국 문화재청으로 하여금, 무언가 그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불어넣은 것도 사실이다. 그 원인 제공을 누가 했건 상관없이 말이다.
저 조치에 다른 저의가 있다는 비판에 문화재청은 물론 격렬히 저항했다. 사대강 사업이 한창 기치를 올리던 2010년 4월 23일, 당시 문화재청장 이건무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작심하고 문화재청 방어에 나섰다. 이 자리서 이건무는 정부가 추진 중인 사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한 문화재 조사(정책)에 대한 오해가 많다면서 “사대강 사업 구역에서 문화재 조사와 보호는 철저히 진행 중”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사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 발간한 만화의 문화재 관련 부문 기술이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잘못된 정보를 담은 만화를 영어판으로 제작해 국제사회에 돌린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만화에는 “문화재 지표조사를 단 두 달 만에, 그것도 무허가 업체에서 실시하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문화재 지표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무는 “사대강 사업 중 적어도 문화재 관련 업무만큼은 문화재청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한다”면서 “문화재 지표조사만 해도 그런 조사에 가장 적절한 시기인 지난해 2월부터 4월 사이에 이뤄졌으며, 더구나 그런 일은 그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발굴전문조사기관에 의해 이뤄졌으므로 무자격자 운운하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수중조사가 축소되거나 한정적으로 실시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해당 지표조사기관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일부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는 나루터를 수중조사했지만, 도편(陶片) 13점을 수습한 데 그쳤을 정도로 이미 수중문화재는 존재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날 현재 사대강 사업구간 중 본류 138건, 지류 29건 등 총 167건의 발굴조사가 이뤄졌거나 추진 중이라는 수치를 제시하면서 “매장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인 문화재보호법 취지에 따라 지표조사 결과 유적 밀집도가 높은 곳으로 드러난 80곳 정도는 실시설계를 유도해 공원이나 녹지공간으로 조성토록 조치했다”고도 말했다.
실제 내가 알기로도 사대강 사업 당시 문화재 관련 부문 사업은 큰 틀에서는 그의 말처럼 진행됐다고 안다. 간단히 말해 매장문화재가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구간은 파괴 공사 대신 다른 공간으로 전용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문화재청 본분을 망각한 일일 수도 있다.
문화재가 있을 줄 알면서, 그 자리에다가 복토를 했으니, 이것이 문화재 보존조치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재 매장 행위라는 비난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 조사한 구간 역시 발굴조사가 철저히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나는 지금의 한국 매장문화조사기관들이 마주하는 무수한 현안의 시발점 혹은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를 지목하는 데는 반대한다. 저런 규제완화 조치는 실은 시대 흐름이 그리 만든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조사기관 난립과 저가 입찰로 대표되는 부실 문화재 조사 논란은 이미 그 직전 노무현 정부시절에 싹을 틔웠다. 하기야 그것이 어찌 노무현․이명박 정부만의 책임이리오?
흔히 이명박 정부를 토목공화국이라 지칭하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그에 못지않은 토목공화국이었다. 애초 행정수도로 시작한 세종시 건설과 전국 권역마다 공공기관들의 분산 배치를 위한 혁신도시 건설사업이니 해서 전 국토가 개발의 광풍에 휩싸인 일은 노무현 시대를 시간 배경으로 삼는다.
대규모 개발에는 필연적으로 문화재 조사가 선행하기 마련이다. 그런 개발을 문화재 조사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노무현․이명박 시대를 매장문화조사기관들의 황금기로 기억하는 조사기관 종사자가 아직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황금기가 준 달콤함은 이내 쓰디쓴 독약이 되어 돌아왔다. 곳곳에서 문화재를 겨냥한 화살들이 몰래 제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매장문화재보호법 법률개정안도 문화재청으로서는 그 반격 카드로 내민 하나일 수 있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돌이켜 보면, 개발의 걸림돌로 인식된 문화재는 언제나, 특히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초창기에는 늘상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빗장을 열어젖혀야 했다. 문화재청은 환경부와 마찬가지로 규제 부서의 대표주자처럼 간주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화재청은 역대 정부 출범마다 그렇게 하나씩 보호막을 벗어젖히다 보니 이제 더는 벗을 것도 없는 나체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그렇게 비난하는 문화재청만 해도, 그렇게 내몰리기만 한 처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나마 매장문화재가 최후의 보루를 그럭저럭 지키는 마지노선을 우리가 그토록 비난하는 문화재청이 마련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1999년 7월 1일, 문화재청은 건설공사로 파괴되는 매장문화재를 보호하고 문화재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 때는 매장문화재 사전지표 조사가 의무화했다.
구체적으로 사업면적 3만㎡ 이상 건설공사를 시행하고자 할 때는 공사 시행 전에 매장문화재가 있는지에 대한 사전지표조사를 해야 하며 15만㎡ 이상의 건설 사업은 그 시행자가 문화재 조사를 위해 문화재청장과 사전협의를 하도록 규정했다.
나아가 문화재사범에 대한 법원 판결이 액수가 낮은 벌금형 위주로 이뤄져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문화재 도굴범에 대한 처벌을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천만 원 이하를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로 대폭 강화하기도 했다.
특히 도굴문화재인 줄 알면서도 그 문화재를 유․무상으로 넘기거나 받았을 경우 물게 되는 벌금도 500만 원 이하에서 7천만 원 이하로 높였고, 매장문화재 미신고 및 훼손행위에 대한 벌금은 300만 원 이하에서 3천만 원 이하로 강화했다.
내가 보기에 그나마 문화재가 그럭저럭 버티는 힘은 바로 이 개정 문화재보호법이었고, 그것을 이어받아 마침내 문화재보호법에서 독립해, 2011년 2월 5일 시행에 들어간 매장문화재보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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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품질 개선을 위한 문화재청의 역할(1)] 위대한 0.19%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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