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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최광식은 왜 고려대 총장이 되지 못했을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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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선생은 일찍이 고려대 총장을 향한 욕심을 드러냈다. 그의 진짜 꿈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문화재청장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아니었으니, 오직 고려대 총장이었다. 그의 마지막 꿈이 고려대 총장이었다. 총장이 무엇이기에 저럴까 하겠지만, 대학에서 생평을 보낸 사람 중에 이른바 보직 성향이 강한 사람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학 총장...이 자리 교육부 담당 사무관 밥이다. 교육부 사무관한테 깨지는 자리가 총장이다. 그럼에도 보직 성향인 사람들, 혹은 뭔가 자리를 차지해 그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사람들한테 저 자리는 유혹이다. 더구나 최광식처럼 대학 사회 내부보다는 그 바깥을 지향하는 사람들한테야 오죽하겠는가? 



문화부 장관 이임사 최광식



저 심정 나라고 알 리 있겠냐마는, 혹자가 보기에 아니, 좋은 자리 다 누려본 사람이 무슨 노욕이라고 총장 자리까지 넘본단 말인가 하겠지만, 가차이서 지켜본 총장들은 뭔가 꼭 짚어 말하기 힘든 권력 지향성이 있다. 최광식 선생이야 워낙에나 일찍부터 고려대 총장 욕심을 공언했으니, 이번이 아니라도 두어번 시도했다가 낙마한 걸로 안다. 


그런 그가 기어이 이번에도 총장 선거에 도전하더니만 고배를 다시 마셨다. 고려대 학칙인지 뭔지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자신은 없지만, 근자 그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간접적으로 나한테도 연락이 왔기에 내가 대뜸 물은 말이 "곧 퇴임하시는데 괜찮을라나?"였으니, 그에 대한 답변은 "퇴임 1년 내에는 된다"는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간당간당했던 셈인데, 그 마지막 꿈을 향해 온몸을 던진 최광식이 기어이 낙마하고 말았다. 



장관직 떠나는 최광식




한데 우리가 주시할 점은 그가 최종 결정권을 지닌 이사회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뿐, 그에 앞선 총장후보자 예비심사 투표에서는 1등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공장 사회부 보도에 의하면 고려대 제20대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총추위)는 지난 13일 총장후보자 예비심사 투표를 통과한 교수 5명을 상대로 공약 등을 심사해 투표한 결과 최종후보자 3명을 선정했으니, "이날 총추위 투표에서는 최 교수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수와 정 교수는 득표수가 같아 공동 2위를 기록했다. 다만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총추위 관계자는 전했다"는 것이다. 


총추위는 교수 15명, 교우회 5명, 법인 4명, 교직원 3명, 학생 3명의 5개 단위 대표로 구성됐다. 30명 총추위원은 1인당 3표를 행사해 최다득표자 3명을 최종후보자로 학교법인에 추천한 것인데, 이에서 1등을 최 교수가 한 것이다. 이에 학교법인은 20일 이사회를 열었으니, 최광식에게 불운은 "총추위 순위와는 관계없이 면접 등 나름의 심사를 거쳐 총장을 뽑게 된다"는 것이었으니, 막판까지 1등을 달리다가 느닷없이 피니시라인에서 뒤쳐진 것이다. 


순리대로 갔더래면 그는 내년 3월 1일 고려대 총장에 취임해 4년간 재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총장 시대 고려대는 어땠을까?


어제 어떤 자리에서 이 얘기가 나왔으니, 내가 그랬다. 


"언론 타기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니, 4년 내내 난리가 났겠지요."


그러면서 나는 최 교수는 "관종"이라고 하면서, 같은 부류 역대 문화재청장으로 유홍준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분 다 엄청난 관종이신데, 조금 달라요. 유홍준은 마이크 스타일이고, 최광식은 이벤트 지향이지요. 유홍준은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고, 한 번 마이크 잡으면 놓을 줄을 몰라요. 대중 앞에서 마이크 잡고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입 때문에 많은 설화를 입었지. 최광식은 시종일관 이벤트주의자에요. 엄청 이벤트 좋아하지요. 잔칫상 차려 놓고 판을 벌리는 스타일이죠. 두 분 다 날 쳐다봐 달라 애원하는 스타일이죠."


막 웃다 말았다. 



문화재청장 시절의 최광식



그렇다면 왜 최광식은 낙마했을까?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고려대와 재단이 같은 중앙고 출신에다가 고려대 출신이요, 그 교수로 부임해 갖은 호사 다 누렸으며, 고려대 출신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그 비상은 끝이 없었으니,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되어 3년인가를 일하더니, 턱하니 문화재청장에 발탁되고, 그 7개월만인가에는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되어 1년을 재임했으니 말이다. 이명박 시대 그는 5년 내내 저들 공직에 있었다. 


나는 항용 최광식 본인한테도 그랬지만, "선생처럼 고려대 티가 팍팍 나면서도 그때문에 욕을 먹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 했다. 그는 고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여타 고대 출신들 다 합친 그 무엇보다 컸다. 그는 철두철미 고대맨이었다. 하지만 고려대라고 하면 한국사회 일각에서 상기하는 그 뭐랄까? 집단주의? 조폭주의랄까 이런 면은 의외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이런 성향은 크기는 한데 다른 면모들 때문에 가려진 모습일 수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그가 고려대라는 사실로 욕을 그닥 먹지 않은 희유한 케이스임은 사실이거니와, 이런 점에서 그와 아주 흡사한 폴리페서 첨단을 걸은 그의 선배이자 선생인 김정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최광식은 왜 최종 이사회에서 낙점받지 못했을까? 어떤 분이 그 화려한 전력이 외려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는데 나는 타당하다고 본다. 즉, 최광식은 그가 인정하건 아니하건 그 전력으로 볼 때 이명박 시대의 사람이다. 철저한 이명박의 사람이다. 이사회와도 끈이 끈끈한 이런 그가 그럼에도 낙마한 까닭은 바로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려는 고려대 독특한 정신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총장 선임은 자칫 고려대를 이명박 시대로 몰아갈 수도 있다. 적어도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고려대 정신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일 수도 있다. 고려대 이사회에서도 이명박 시대의 최광식 총장은 지금의 권력과는 대척점을 형성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를 이유로 그런 색채가 있을 법한 사람을 원천에서 차단함으로써 고려대는 현재의 권력과도 묘한 연합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광식은 이대로 관력을 마감할까? 글쎄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아는 최광식은 이대로 죽을 사람은 결코 아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재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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