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특징 중 하나는 사돈이 땅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증상이라, 최충이 연 사립학교가 성공하자, 그 꼴을 딴 사람들이 보고둘 리 만무했다.
더구나 쪽집게 강사로 소문나서 떼돈까지 벌어가는 명문입시학원이라는데 그것을 어찌 눈뜨고 차마 볼 수 있겠는가?
각자 찌라시 만들어 돌리며 학생 유치에 혈안이었으니 그때라고 허위과장광고가 왜 없었겠는가?
그 찌라시엔 이런 구절이 빠지지 않았다.
과거 합격 백퍼 보장
앞서 소개한 고려사 권74 지志 권 제28 선거選擧2 학교學校 사학私學 편에는 최충과 경쟁한 다른 사립학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 (최충 말고도) 유신儒臣으로서 도徒를 세운 이가 11명이었다.
고 하면서 그 명단을 나열하기를
1. 홍문공도弘文公徒 by 시중侍中 정배걸鄭倍傑, 일명 웅천도熊川徒. 이름으로 보아 공주와 밀접한 듯하다.
2. 광헌공도匡憲公徒 by 참지정사叅知政事 노단盧旦
3. 남산도南山徒 by 좨주祭酒 김상빈金尙賓...명칭으로 보아 개경 남산 쪽에 자리잡은 듯하다.
4. 서원도西園徒 by 복야僕射 김무체金無滯..명칭으로 보아 개경 서쪽에 있지 않았나 한다.
5. 문충공도文忠公徒 by 시중侍中 은정殷鼎
6. 양신공도良愼公徒 by 평장사平章事 김의진金義珍 or by 낭중郎中 박명보朴明保
7. 정경공도貞敬公徒 by 평장사 황영黃瑩
8. 충평공도忠平公徒 by 유감柳監
9. 정헌공도貞憲公徒 by 시중侍中 문정文正
10. 서시랑도徐侍郞徒 by 서석徐碩..이로 보아 서석은 시랑을 역임했다.
11. 구산도龜山徒...설립자 모름
이들이 최충과 동시대에 경쟁한 사설학원인지는 저 인물들 생몰연대를 봐야 하겠지만, 고려사는 아무튼 동시대 경쟁한 쪽집게 강사들로 봤다.
이에서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봐야 하는 대목은 그 창립자겸 재단이사장이 모조리 재상 출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어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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