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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지형상, 제주에는 바다에 나갔다가 표류하여 외국에까지 흘러가는 이가 적지 않았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 각국은 표류민에 상당히 관대해,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잘 대접한 뒤 고이 돌려보내주곤 했다.
우리의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제주에 머무를 때도 그런 과정을 거쳐 일본에서 돌아온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추사의 제자 박혜백朴蕙百이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났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사무라이들이나 갖고 다니는 일본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가 그 칼을 얻어와서 스승 추사에게 보여드렸다.
붓의 대가 추사와 '니뽄도'라니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있나 싶지만, 사실 추사는 일본 칼이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젊어서 청나라 문인들과 편지로 교류할 때 어떤 이가 그에게 "일본도 세 자루만 구해주시오"라는 글을 보내왔다.
필시 동래왜관을 통해서 일본도를 구해 베이징으로 보냈으리라.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 이 절해고도에서 늙은 추사 본인이 다시 일본도를 만날 줄이야!
시퍼런 날을 호롱불에 비추어보자니, 추사 선생은 일본에 그렇게 많다는 일서逸書(없어진 줄 알았던 책)들이 문득 떠올랐던가보다. 이에 시를 지어 제자 박혜백에게 주었다. 계첨은 그의 자이다.
'도랍'을 살펴 보니 진나라 때 유물이라 / 情知刀臘是秦餘
아라비아와 유럽도 같지 못할 뿐이겠나 / 大食紅毛不啻如
후지산 산 빛깔이 푸르러 눈에 드니 / 富士山光靑入眼
불에 타기 전 글을 자네 다시 찾아보라 / 煩君更覓火前書
- 계첨이 배가 표류되어 돌아온 사람에게서 일본도를 구득하여 보여 주기에 부질없이 이 시를 빨리 불러서 주다[癸詹從漂船歸人 得日本刀而見示 漫此走呼贈之]
'도랍'이란 양면에 날이 있는 칼을 말한다고 한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주註에 “도씨桃氏가 칼을 만드는데 납臘의 넓이가 2촌 반이다.” 하였고, 소疏에 “양면에 다 날이 있음.”이라고 하였다. 그때 추사가 본 일본도는 외날 刀가 아니라 뒷면에도 날이 있는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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