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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 박승무(1893-1980)라는 화가가 있다.
한국화 근대 6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로, 특히 눈 내린 겨울 산수화에 능했다.
짙고 옅은 먹에 아주 약간의 채색만 더했던 그의 설경이 어찌나 인기있었던지, 설경 주문만 들어온 까닭에 사다 놓았던 물감을 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작가로서는 손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설경을 보면 왜 그렇게 인기있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의 겨울은 따뜻하다.
겨울 그림이 따스하다니 의아할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어 스산한 풍경이 아니라 눈 개어 평온해진 정경이기에 가능하다.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눈을 이고 진 산이며 마을은 어둡지 않다.
자박자박 눈길을 걸어오는 등 굽은 노인은 꼭 색 있는 옷을 입으신다.
지루한 설백색에 한 점 포인트가 돋보인다.
저 노인의 발자국을 따라 들어가 만날 마을은 어떤 곳일까.
온갖 희로애락을 묻어두고 눈 속에 폭 갇혀 겨울을 나는 저 초가마을...보기만 해도 기분이 누그러진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많았던 그 때 그 시절, 이런 그의 설경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을까.
어쩌면 지금도 유효한 위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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