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서를 해서로 바꾸어 읽기 쉽게 하는 작업을 탈초라고 한다. 아래 이미지는 어떤 현판의 일부분이다. 현재 현판 상태는 좋지 않으나 글씨는 본래의 예리한 판각이 그대로 살아 있고, 사진 작업도 음양의 깊이를 잘 살려 판독하기 좋게 이미지를 떴다.
* 나는 어릴 때부터 한문을 접했고, 대학에서도 중문학을 전공했으므로 한자와 한문 관련 문장이나 유물을 자주 대하는 편이다. 그러나 초서는 그렇게 일찍 만나지 못했다. 초서는 그 자체로 읽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초서를 접한 것은 2005년 무렵 영해의 한 지인이 집안에 전해내려오는 방대한 문적을 내게 번역해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그 문적 속에 초서 간찰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초서 간찰을 읽기 위해 초서 관련 서적과 사전을 찾아보면서 초서에 밝은 분들로부터 탈초 작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 이후 틈틈이 초서를 익히며 옛 사람들이 일상으로 쓴 초서 문서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100%는 아니더라도 초서 문서의 글자 짐작과 문맥 파악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 초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는 초서가 그냥 해서를 휘갈겨 쓴 문자가 아니라 한자의 초기 문자인 전서 시절부터 발전해온 매우 체계적인 문자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초서는 해서나 행서를 잘 안다고 해서 판독할 수 있는 문자가 아니라 우리가 알파벳을 따로 배우듯 별도로 공부해야 하는 문자임을 깨달았다.
* 탈초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초서 필획의 흐름과 특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초서의 필의를 알고 글자의 형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초서에는 전서에서 발전해온 글자들도 있으므로 해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글자도 있다.
* 또 초서는 서로 다른 편방이나 필획을 동일하게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문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초서 문서는 단독 글자만으로 탈초에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앞뒤 문맥으로 전체 문장을 판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는 짧은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므로 평소에 부단히 한문 문장을 읽어야 한다. 또 간찰, 현판, 일기, 유기, 사문서, 공문서, 이두문 등 각 문체의 상용 어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다양한 한문 형식을 자주 보아야 탈초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 또 중요한 점은 하루에도 몇 점씩 초서를 접해야 기왕에 익힌 초서를 잊지 않을 수 있다. 초서를 열심히 익혔음에도 자주 초서를 접하지 않아 결국 까맣게 잊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더욱 어려운 점은 초서를 바위나 목판에 판각하면서 본래 필자가 써놓은 필의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변형한 경우다. 아래 이미지의 몇 글자도 그런 점이 드러나는데 다행히 전체 문맥과 초서 필획의 특징을 감안하여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 다음과 같이 탈초했다. 형식은 7언절구이다.
小學書爲後學師, 소학 책은 후학의 스승이므로,
先生待賢勸如斯. 선생께서 어진 이를 기다리며 이처럼 권면했네.
正當丁丑重回歲, 바야흐로 정축년 해가 다시 돌아오는 때에,
欲挽儒風比昔時. 유풍을 회복하여 옛 시절에 비기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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