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일太一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세계에서 태일太一은 나름 철학적 개념이라 하지만, 실은 단순무식해서 가장 크신[太] 하나[一] 뿐인 존재라는 뜻에 지나지 아니하며, 그런 까닭에 태일泰一이라고도 쓰고, 더러 태을太乙이라고도 한다.
주로 도교 경전에 많이 보이는 명칭이기도 한데, 한국사회에서는 무속사회에 자주 보인다. 이는 한국사회 무속이 한국고유한 전통 사상이 아니라 실은 그것이 도교의 다른 이름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태일은 그런 까닭에 간단히 말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태일은 보다시피 지극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그 표현 자체로는 실상 주역에서 비롯한 태극太極과 비스무리해서, 둘을 구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관념에 지나지 아니하는 이 태일이 뭇 생명 어머니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구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 태극 또한 태극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뉘어야 비로소 생명체로 발전하듯이 태일 또한 그 다음 단계로 물[水]로 발전한다. 이 물이 있어야 뭇 생명이 태어나니깐 말이다.
그래서 태일이라는 말을 듣고는 대뜸 태일생수太一生水를 떠올리는 사람이 좀 있을 법하니,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이후 줄기차게 이런 관념이 보이기 시작하니,
맨 먼처 장자莊 천하편天下을 시작으로 여씨춘추呂氏春秋 대약편大藥篇, 그리고 이후 회남자淮南子 같은 도교 혹은 도교 성향 짙은 문헌들에서 생명의 절대 근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1993년 이른바 곽점초묘郭店楚墓라는 전국시대 초나루 무덤에서 출토된 대량의 죽각 문헌 중 하나로 훗날 이를 정리한 사람들이 붙인 명칭으로 태일생수 太一生水가 있으니,
이를 보면 太一에서 水·天·地·神明·陰陽·四時·倉熱·湿燥·歳가 생긴다는 개념이 보인다. 이 태일생수는 실상 장자가 말한 그 태일생수다.
태일은 그 명칭이 시사하듯이 구상화하면서 곧장 하늘로 치고 올라가기도 하는데, 왜? 가장 존귀한 분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이다.
하늘을 주재하는 최고 천신은 누구인가? 북극성이다. 이 북극성은 한대 말이 되면 천황天皇 혹은 천황대제天皇大帝라 하거니와, 이는 실상 그 전 시대 시경에서 보이는 최고 천신 호천상제昊天上帝를 대체하는 최고 신이었다.
이 천황대제는 한때 동아시아 세계를 제패하다가 훗날, 그러니깐 당말 이후 송대에 접어들어서는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그 새로운 절대 패자가 오늘날까지도 절대 권좌를 유지하는 옥황대제玉皇大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다. 손오공 오야붕 그 옥황대제 말이다.
조선시대 도교 성전이 있어 당연히 이에서 제사하는 최고신은 태일신이었다. 태일전은 곳곳에 있었으니, 그것이 자리하는 지점이 평지겠는가? 바다겠는가? 산상이겠는가? 볼짝 없다. 하늘에 가까운 지점이어야 하니 모름지기 산상에 건설했다.
이런 천신 제사시설을 태일전太一殿이라 했다. 그런 태일전 중에 지금의 충남 태안군 백화산이라는 곳에 있던 태일전 흔적이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마각을 드러냈다.
2. 태안에서 드러난 태일
태안군이 뿌린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 태일전은 태안군이 (재)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발굴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백화산 구역 약 750㎡ 일대를 조사한 결과 태일전을 구성한 건물터 3동과 관련 축대 흔적이 발견되고 용 그림을 넣은 암막새를 비롯한 다량의 기와와 그리고 자기류가 나왔댄다.
문헌에 의하면 이곳 태안 태일전은 1478~1479년 경북 의성에서 옮겨왔다 한다.
1호 건물지라 이름 붙인 흔적은 기단 규모 기준으로 동-서(양 측면) 길이 1750㎝, 남-북(전후면) 길이 1500㎝로 방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보였다. 기단 석렬은 네 면에 모두 확인되지만 상부는 무너지고 1단 정도만 남았다.
이 중에서 좌측면(동쪽편)과 전면(남쪽) 기단석은 다듬은 대형 장대석 형태로 확인된다. 기단의 전면과 우측면(서쪽편)에는 계단시설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았다. 초석은 대부분 원형이고 기둥이 박힌 자리는 지름은 46~70㎝가량이다.
초석 21매가 확인되고 개중 그 아래 다짐 시설인 적심은 1개가 확인됐으나, 이미 이동이 심해 본래 면모를 알기는 어렵다.
이 1호 건물지 기단 정면에서 서쪽으로 약 40~60㎝ 떨어진 지점에서 드러난 2호 건물지는 기단 기준으로 동-서 길이 520㎝, 남-북 잔존길이 460㎝다. 기단 석렬은 깬 돌을 이용했고 교란으로 일부 결실돼 1단만 남았다.
3호 건물지는 1호 건물지 기단 전면에서 남쪽으로 700㎝ 가량 떨어졌으며, 계단시설과 一자로 이어지는 배치 양상을 보인다.
본래 문이 있던 자리로 추정하나 확실치 않은 점이 있어 판단을 유보한다.
이밖에 축대의 경우 1호 건물지 기단 뒷면에서 210~230㎝가량 떨어져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다. 길이 1810㎝, 최대 잔존높이 136㎝. 축대 서쪽 구간은 자연암반을 적극 활용한 반면 동쪽 구간은 다듬어진 석재를 이용했다.
조사단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시설과 원형 초석, 축대 등 상당한 위용을 갖춘 건물지 및 관련시설이 확인되고 출토 기와 중 용문 암막새 등이 포함됨에 따라 태안 태일전이 왕실과 관련된 권위 있는 건물이었음을 뒷받침해준다"고 설명한다.
아마 이번과 같은 명백한 도교시설 흔적이 제대로 발굴되기는 처음일 것이다. 혹 기존에 조사된 비슷한 건물터들도 도교 신전인데 모르고 지나갔을 공산도 내가 봐서는 아주 크다.
근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인가? 강화도에서 도교 신전으로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을 찾았는데, 이와 같은 좀 더 명백한 도교 신전들이 발굴되면 물론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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