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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묘지에서 시작해 묘지에서 끝나는 망우동 이야기

by taeshik.kim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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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 지역사 탐방 시리즈 일환으로 망우동 역사를 정리한 특별전 낙이망우樂以忘憂-망우동이야기를 개최 중이다. 

이번달 1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내년 3월말까지 계속된다. 

망우동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묘지를 뺄 수는 없다. 실제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忘憂 자체가 무덤에서 비롯한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가 자신이 죽어 묻힐 곳으로 지금의 동구릉을 정하고서는 돌아오는 길에 근심을 덜었다는 데서 비롯한 지명이 망우동 혹은 망우리인 까닭이다.  
 

망우동지

 
이는 망우동이 한편으로는 교통 요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성계가 잠시 쉬지 않았겠는가?

실제 망우동은 전근대에는 서울 기준으로는 동북쪽에 위치하는 까닭에(물론 당시에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소속이었다) 서울-경기-강원을 오가는 길목이다.

나아가 이성계가 그랬듯이 조선시대 왕들이 조상 무덤을 오가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니던 길이 곳이기도 하다.

이런 망우동이 식민지시대에는 일대 풍랑을 겪는다. 망우동에 철도와 공동묘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가 1963년 망우동은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속하게 된다. 이후 도시가 개발되면서 망우동은 서울의 중요한 지역이 된다. 

이 특별전은 이미 돌아봤기에 추후 상세한 소개를 기약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여유가 없어 일단 이런 자리가 있음을 상기하면서 많은 관심 이미 다녀온 사람으로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이미 아래와 같은 관련 글을 썼으니 아울러 참고 바란다. 


 
40년 만에 폐쇄된 망우리 공동묘지는 한국고고학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40년 만에 폐쇄된 망우리 공동묘지는 한국고고학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식민지시대가 개막하자 조선총독부는 죽은 사람의 무덤을 허락 없이 만들지 못하게 한다. 그 일환으로 1912년에는 '묘지규칙'을 만들어 공동묘지에만 묻을 수 있게 했다. '묘지규칙'에 따라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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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동 #망우리 #망우리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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