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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파경(破鏡)을 다시 접붙이는 행위는 문화재 파괴다

by taeshik.kim 2019.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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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북문화재연구원이 공개한 전주 덕진구 원장동 전주-완주 혁신도시 개발사업(4구역-도시부)' 부지 내 발굴성과 중 1호 토광묘 유물 출토 장면입니다. 

 

이른바 초기철기시대 토광묘에서 각종 청동기물을 어떻게 매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인 바, 여기에서 파경(破鏡)이라 해서 동경(銅鏡)을 두들겨 깨서 넣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동경은 무덤 조성 뒤 어느 시점에 목관이 썩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짜개진 걸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매장 행위 당시에 장송(葬送) 행위의 하나로써 일부러 깨뜨려 넣었음이 확실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수습한 유물 복원입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보존처리 과정이 이 거울을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땜질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부러 깨어서 넣은 거울이라는 점에서 저걸 다시 붙이는 일이야말로 훼손입니다. 깨어넣어야 한 이유를 말살하는 행위입니다. 

 

기냥 놔둬야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이런 식으로 복원 전시하는 모든 동경, 다시 깨드려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본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 사진은 삼각연신수경(三角縁神獣鏡)이라 해서, 고대 일본의 고분 시대에 흔히 보이는 동경 중 하나입니다. 사진은 그 일종인 삼각연동향식신수경(三角縁同向式神獣鏡)이라는 것으로 이 동경 뒷면에는 보다시피 그 제작 내력을 적은 글자들을 양각했거니와, 이에 의하면 제작 시기는 「□始元年」(正始元年)입니다. 

 

군마현群馬県 고기시高崎市 해택고분蟹沢古墳 출토품으로 현재는 동경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이 소장 중이며 일본 중요문화재重要文化財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동경, 깨뜨려 넣었습니다. 그 깨뜨려 넣은 것을 수습하고는 저리 다시 붙여놨습니다. 깨뜨린 조각 중에서 일부는 못 찾았습니다. 저 못 찾은 부분은 발굴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매장 직전 깨뜨리다가 저 실종된 조각 부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조각은 무덤 주변 다른 곳에다가 묻었을 겁니다.  

 

장송하는 사람들이 부러 깨뜨려 넣은 동경을 다시 접붙이는 이런 일이 왜 고고학 발굴현장과 문화재보존처리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가?

 

첫째, 그들이 파경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 해도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전부인 까닭입니다. 

 

둘째, 고고학도들과 보존과학도돌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저들 유물을 발굴한 자들과 그것을 보존처리하는 자들은 편리성을 위해서, 다시 말해 실측을 제대로 해야한다면서, 저런 문화재 훼손 행위를 서슴지 않습니다. 

 

셋째,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는 그럴 듯한 구실입니다. 한데 모아서 다시 붙여놔야 보는 사람들이 이해가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동경을 포함한 거울은 그 절대의 기능이 저런 화려한 장식을 베풀어 넣은 뒷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실제 얼굴을 비추어 보는 반대편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고학자나 보존과학자, 그리고 박물관 종사자들은 모릅니다. 안다 해도 웃어 버리고 맙니다. 저들 동경을 대하는 관람객들 압도적 반응 중의 하나가 "이걸로 도대체 어떻게 거울로 썼단 말인가" 입니다. 그 심각성을 이제는 고려해야 합니다. 정작 거울의 본래 기능을 보여주어야 할 반대편 전면은 엎어버린 채 전시하니 이 꼴이 벌어집니다. 

 

이 파경 습속과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가 기원전후 목관묘에서 더러 출토하는 소위 방제경(倣製鏡)은 깨뜨려 넣는 일이 전연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방제경은 온전한 걸 넣는다는 겁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방제경은 그 자체로 명기(明器)인 까닭입니다. 명기란 무엇인가? 살아 생전에 무덤 주인공이 실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가 죽어 그 기념으로 생전 생활을 '모방'해서 만들어 넣어주는 무덤용, 매장용 물건인 까닭입니다. 

 

방제경이란 무엇인가? 바로 명기입니다. 방제경을 실제 거울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방제경이라는 조악한 물건을 거울이라 생각해서 부러 만들어, 그것을 죽은 사람을 위해 묻어준 데 지나지 않습니다. 

 

자, 이제 방제경의 이런 특징을 통해 우리는 왜 생전에 실제로 사용한 동경을 깨뜨려 넣어야 했는지 비로소 자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왜인가? 

 

그것은 명기인 까닭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물건인 까닭에 생전에 사용한 거울을 일부러 깨뜨려 넣은 겁니다. 

 

*** 파경을 접붙이는 행위의 부당성을 내가 하도 자주 논한 때문인지, 아니면 관련 업계 자발적 각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요새는 함부로 붙이지는 않는 듯하다. 

 

***

 

저린 일을 서지학을 공부하는 박광헌 박사는 "멋으로 입는 찢어진 청바지 바늘질해 놓은 엄마와 같은 일!!!"이라 했는데 새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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