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이다. 나는 '원형'이라는 말을 문화재에서 없애야 한다고 그리 오래도록 외쳤다.
하지만 여전히 원형이라는 게 무엇인가의 절대준거가 있다고 착각한다.
누가? 문화재업계 종사자들부터 원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전과 복원후
묻는다.
원형이란 무엇인가?
아니, 물음을 치환한다.
원형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그럼에도 밑도끝도 없는 '원형'이라는 망상에 허우적이며 벗어날 줄을 모른다.
이 원형주의에 빠진 독버섯은 구체적으로 다양한 문화재업계 중에서도
고고학, 건축학, 그리고 보존과학 이 세 놈이 특히 더 그래해서 원형이 있다고 착각한다.
참고로 무형문화재 분야에서는 유형문화재 분야에 통용하는 '원형'이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다.
항용 내가 주장하듯이, 필요하면 종묘제례악에도 조수미 부르고, 피아노도 쓸 줄 아는 융통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부르고 갖다 쓰야 한다.
저 원형이라는 말을 버리지 않는 한, 문화재는 언제나 박제물일 뿐이다.
현재의 종묘제례악 원형은 과연 언제적 어디인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강점기 직전? 웃기는 소리다. 그 종묘제례악도 간단없이 변했다. 골백번은 변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원형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않는 한, 그에서 또 다른 독버섯이 자란다고 주장했으니,
이른바 문화재 시민운동이라는 독버섯이 그것이다.
이들은 걸핏하면 원형 훼손이라는 말을 들고 나와,
문화재 현장이 원형을 훼손했다고 삿대짓을 해댄다.
없는 원형을 누가 어찌 훼손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문화재청을 필두로 하는 문화재행정당국부터 '원형'에 휘말려, 없는 원형을 고수하자고 하는 유령이 떠돈다.
"문화재 수리는 이상과 현실의 싸움…최선 방안 도입해야"
문화재판에서 원형 원형이라고 나발을 불어대니, 감사원까지 '원형원형' 나발을 부는 게 아닌가?
애초 성립할 수도 없으며, 그런 까닭에 있을 수도 없는 원형이라는 유령은 문화재판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애주 살풀이춤
이 원형주의를 고수하는 한, 이애주 진혼춤은 죽었다 깨어나도 '문화재'가 되지 아니한다. 전통이 아닌 까닭이다. 원형이 아닌 까닭이다. 변용은 용납하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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