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용만 하면 그것으로 표절 혐의에서 벗어난다 생각하지만 이 문제도 간단치 않다. 예컨대 챕터 하나, 혹은 몇개 패러그래프가 인용에 기반한 다른 사람 글의 축약인 때가 있다.
한데 국내 학술계 풍토를 보면 이게 실은 표절인 때가 허다하다. 그것은 인용과 각주의 처리 방식에서 말미암는다. 인용이나 축약은 대체로 보면 그것이 끝나는 지점에다가 각주 하나를 붙이는데, 이렇게 하면 각주가 있는 그 문장만이 인용 혹은 축약인지, 아니면 그 앞쪽 어디까지가 인용 축약인지 독자는 알 수가 없는 때가 많다.
나 또한 이런 일에 부닥쳐 나름대로 고안한 방식이 예컨데 이에 대한 이러이러한 설명은 누구의 어떤 글을 축약한 것이다는 식으로 밝히곤 한다. 따라서 인용은 거의 예외없이 직접 인용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도 적지 않아, 우선 따옴표가 너무 많아져 글이 누더기가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문체가 달라 애를 먹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용빈도가 많은 고대사가로 고 이기백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양반 문체 무지 싫어한다. 그런 싫어하는 문체를 내 주옥같은 문체에 섞을 수는 없다.
덧붙여 직접 인용도 예컨대 한 패러그래프 이상이면, 각주가 있다 해도, 표절로 보는 인식이 엄연히 구미 학계에서는 있다고 내가 안다. 그래서 인용은 대체로 내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의 간접 인용이어야 한다. 외국 학자 글이 대개 이런 간접인용방식을 택하는 까닭이 표절 혐의 때문이라고 안다.
(June 21, 2014 글을 약간만 손댔다.)
*** 이 포스팅에 영국 유학 중인 리승수 선생이 아래와 같은 논평을 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직접인용 왠만 하면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paraphrasing을 장려합니다. 일반 학부생의 경우 직접인용 비중이 전체 글의 30%를 넘어갈 경우 표절로 간주됩니다. Turnitin이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 넣어서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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