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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사: 서바이벌의 제왕

by 초야잠필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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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까지의 한국사를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뽑아보라면 필자의 경우 단연코 "Survival"이다. 

한국사는 살아 남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한 역사다. 

결국 역사라는 것이 번영은 둘째이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명제라면, 

한국사는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문명이 명멸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끝까지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고 21세기로 넘어왔으니 가히 "Survival"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기원전 3세기의 세계. 전세계에 존재했던 많은 문명에서 기원전 1천년기에 출현하여 종족의 교체 없이 끝까지 살아 남은 문명은 많지 않다. 종족적, 문화적 연속성의 측면에서 한국사는 매우 탁월하다.


그런데-. 

단순히 survival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누리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과 비전을 한국사는 가져야 한다. 

쳐들어온 도둑놈을 잡는 세계관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수천년간 한국사를 관주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도둑놈 잡는 세계관 이상의 그 무엇을 우리 역사에 더할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고, 

이러한 역사관을 형성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문학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도둑놈 퇴치 세계관을 그 누구보다 한국사회에 전파하고 있는 주체가 한국 인문학이라는 생각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서기 1753년의 세계. 한국사는 가히 Survival의 끝판왕이다. 기원전 1000년기 전반에 제대로 된 문명이 출현해 3000년간 영역도 거의 바뀌지 않고 망하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며 주체 민족도 교체된 바 없는 문자그대로 "비놀리아 문명"이다. 20세기까지의 한국사는 가히 살아 있는 화석, "시일라칸스 문명"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렇게 살아남기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안 해 본 것이 없다. Survival은 절대로 공짜로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비놀리아 세계관을 앞으로도 계속 고수하며 또 다른 3000년을 survival하면서 만족할 것인가의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3000년짜리 비놀리아 세계관을 현대 한국사회에 아직도 맹렬히 퍼뜨리는 주체 역시 인문학이다. 오히려 인문학은 한국인들에게 다음 수천년을 번영할 수 있는 세계관을 줘야 한다. 21세기 한국인문학의 사명은 필자가 보기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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