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필자가 서술한 대로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망하는 순간까지도 경성제대 외에는 대학 설립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명분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도 형평성 문제에서 매우 문제가 커서 1940년대 교육제도가 그대로 이어지는 한 조선인은 대졸자를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저학력과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상태였다.
1940년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1919년 삼일운동 좌절 후 시도된 민립대학 설립이 그때까지도 성공하지 못하고 계속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본다.
관립대학은 설립되기 힘들다고 본 것인지, 민립대학에 대한 논의인데 역시 문제는 돈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래서 저개발국 대학교육은 정부 주체의 호의가 없으면 본궤도에 올라가기 힘들다.
해방 이후에 날림이라 해도 대학과 대학생의 급증을 생각하면 일제시대는 적어도 교육 측면에서는 조선인을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해도 좋을 것이다.
아래 옛날신문에 올라있는 기사를 그대로 옮겨 둔다.
첫머리 글은 이병도 선생 글인데, 5년 후에 일본이 망해 민립대학이 하나가 아니라 무더기로 생겨나고 그 자신도 국립대학 사학과의 태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것이 인생이다.
P.S.1) 아래 기사에는 대학이 없는 원인으로 돈이 없다, 인재가 없다, 기운이 없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고 있지만 돈이 없고, 인재가 없고 기운이 없어도 정부당국의 선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대학설립과 대학생 증원이라는 것은 1950년대 한국사가 웅변한다.
이 기사에 인터뷰 한 사람들도 조선땅에 대학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진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래도 당시 내노라 하는 똑똑한 양반들이라 알고 있었을 것이다.
***Editor's Note ***
식민지 조선에 대학을 더 세워야 한다는 움직임을 누른 주체가 조선총독부인지 본국 일본 정부인지는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왜? 조선총독부를 내지 일본정부와 동일시하는 까닭이다.
본국 정부와 총독부는 생각보다 단일하지 않아서 곳곳에서 충돌한다.
가장 큰 문제는 본국 정부가 틀어쥔 예산과 조직편성권이었으며 그 다음이 법률제정권이었다.
조직예산 늘리고자 하는 총독부와 그걸 막고자 하는 본국 정부는 사사건건 부닥쳤다.
총독부는 법률제정권이 없어 고작 총독 명의 훈령 정도만 만들 수 있었지만 이 훈령도 본국에서 만든 관련 법률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이 총독부 관리들이 본국 정부와 싸움하는 양상을 보면 흡사 독립투쟁하는 듯하다.
총독부가 매양 하는 말이 본국 정부 저놈들은 현지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학이 더 필요하다는 걸 총독부는 알았다. 이런 점들이 이상하게도 전연 연구가 안 되어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럼 넌 총독부가 잘했다는 거냐 뭐냐? 너 친일파냐? 식민지근대화론자냐?
이런 공격받기 십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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