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은 그 학문적 수준이 높지 않다.
대학에서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필자 여시 이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울수 없다.
한국현대 대학사를 유심히 보면,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대학은 자기 분야에서의 학문적 성취보다는 교수 개인의 정치적 성취에 더 가치를 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런 이야기는 자세히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간단히 줄인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 유림 역시 비슷하다.
모두가 학자를 자처하고 있었던 지라 어마어마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철학적 논변의 태반은 송대 유학자들의 논변에서 다루어진 이야기의 재탕이다.
한국 유학의 특이점을 들자면,
1. 도설을 통한 전대 학설의 정리
2. 성리학에서 강조한 행동윤리를 현실에서 관철시키는 것
3. 그리고 2와도 통하는 문제인데 중국 유학이 완비하지 못한 예론의 발전이다.
이 중 1과 2는 새로운 학문적 성취라고는 볼 수 없고 3 정도가 아마 새로운 성취에 해당할 것 같은데, 이 역시 과연 이 주제를 17세기 이후 그렇게 난리를 쳐가며 궁리해야 할 문제였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조선시대 예송이 격렬했던 것은 예학으로 유림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성취하려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례에 대한 고찰 정도에 그쳐야 했을 예론은 정치와 만남으로써 상대를 죽이고 살리는 예송이 된 것이다.
한국 대학 교수들이 시도때도 없이 정치적 발언을 전공 불문 남발하고
대학교수의 최대의 성취는 입각, 정치적 출세에 두게 되어
나라가 선진국 소리를 들어도 번듯한 노벨상 하나 못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결국 바로 이런 대학의 천박한 "현실참여주의" 때문인데,
이러한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 참여주의는 그 기원을 보면 근대적인 것도 아니고,
사실은 조선시대 유림, 산림의 행태와 깊이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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