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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ODA에 첫 발을 담그게 된 2010년 무렵 상황을 회고하건대 문화재도 그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 쪽에서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고 안다.
따라서 저 일, 곧 정병국 당시 국회 교육문방위원장이 라오스 현지에서 부아손 총리를 면담해 양국 문화재 분야 교류를 위한 협의를 한 일은 그렇게 무수하게 말만 많고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아니한 그 목소리를 구체로 실천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획기라 해야 한다.
실제 저를 깃발로 삼아 문화재가 마침내 ODA에 깃발을 꽂았기 때문이다.
물론 저 일은 문화재청을 들쑤셨으니 저 합의는 사전에 문화재청과 그 어떤 사전협의도 없었던 까닭이다.
당시 문화재청 교류협력과 실무를 맡았던 모씨는 앞선 포스팅에 느닷없이 치닥거리하느라 없는 예산 5억을 마련하느라 똥을 쌌다 하지만, 미안하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래면 이 사업은 적어도 5년 이상은 늦춰졌으라 본다.
외려 이렇게 느닷없이 들이치는 바람에 예까지 왔으리라 본다.
물론 그 치닥거리를 하고 이 사업을 반석에 올려놓은 사람들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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